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피 흘리고 죽어가면서 수많은 탄압과 시련을 감당해야 했다. 그 희생의 결과 군부의 독재자들은 사라졌고, 그 끄트머리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야만의 정치권력에 항쟁하고 저항하였다. 한편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했다. 살이가 나아졌으나 분배는 늘 찬밥 신세였다. 최근에는 분배를 말하면 좌경의 멍에를 져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이룬 것은 별로 없다. 정권은 여전히 제멋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결정하고 제멋대로 일을 벌인다. 하나마나한 일들을 한다.(아니, ‘하나마나하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해서는 안 되는’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런데 참으로 우리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줄기차게 주장하고 요구하고 관철하려했던 민주화니 성장이니 하는 이면에서, 사회의 복지를 위한 근간을 발목잡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무심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물론 세상을 보는 안목이 앞서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무엇에 의해 발목 잡혀 있는지 간파한지 오래일 것이다. 나는 어리석었으므로 고백하건대, 우리를 발목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는 나의 무지를 향해 충격을 던져주었다. 양심적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책에 실체가 제대로 드러난 삼성은 ‘썩은 별’이었다. 부패가 심하고 형체가 일그러진 것이었다. 이미 어두움을 밝히는 별의 기능은 상실한 것이었다. 삼성은 썩었으므로 원칙 없는, 고삐 풀린 망아지에 비유될 수 있는 재벌이었다. 아니 “악의 축”이었다. 세상을 주무르는 핵심에 삼성의 구조조정본부가 있고 재무팀이 있으며, 몇몇 가신들이 소름 돋는 일들을 획책하고 있었다. 그들의 비리와 범죄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대부분 탈법과 비리, 로비와 뇌물, 협박과 회유에 관한 것이다. 무수한 실명들이 등장한다. 삼성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삼성 왕국(王國)이었다.
책에 의하면, 그들의 비자금 규모는 추정조차 불가능한 해외비자금을 빼고도 10조원이 넘는다. 분식회계나 계열사로부터 추렴한 비자금은 금융실명제법에 위반되는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다. 심지어 회계투명성에 대한 보증으로 간주된다는 독일 본사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가 개발한 SAP-R3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의 엔진까지 뜯어고치는 데까지 공을 들인다. 그들은 그 많은 돈으로 수시로 권력의 수뇌부를 향한 집중적 로비를 편다. 현직 검사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주기도 하고, 노조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관할 관청의 공무원을 매수하기도 하고, 납치와 회유와 협박의 자금으로 뿌리기도 한다. 회장의 생일잔치에 10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대도 조세형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활용한다거나, 봉인된 창고 안에서 문제되는 서류를 찾아 소각하기 위해 법원사무관을 매수한다거나, 어떤 부장검사의 처남이 삼성증권에 투자해서 입은 손실액을 보상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공을 들인다. 때로는 치졸하다. 곱지 않은 부장의 정리해고를 위해 취소된 3만 원짜리 신용카드 전표를 경비로 처리한 7년 전 사실을 밝혀내고 징계해직하기도 하고, 생산현장에서는 화장실에 수건도 두지 않는 내핍을 강요한다. 관료들이 “삼성의 돈은 안전하다”고 하거나, 대법관이 삼성이 보낸 150만 원짜리 굴비를 받아먹는 풍경은 가엾기도 한 것이다. 그 아버지가 어머니의 상가에도 가지 않았으나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 상가에는 직접 방문하는 것이나, 그 아들이 시가 총액이 200조원에 이르는 그룹을 승계하면서 16억 원의 세금밖에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닮은꼴이다.
어제 저녁 기사에, 자산 규모가 130조에 이르는 삼성생명이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의 심사결과 적격 판정을 받아 5월 중에 상장한다고 한다. 삼성생명의 상장으로 이건희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게 되는데, 이는 삼성 비리를 수사하겠다던 조준웅 특검이 차명으로 관리해오던 삼성생명 지분을 이건희 몫으로 인정해 준 때문이라는 김용철 변호사의 해석이 책 속에 있다. 삼성생명의 지분이 4.5%에 불과하던 이건희는 특검을 통해서 지분이 20.76%로 불어나 최대주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은 유상증자를 실시하는데, 계열사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며 실권하고, 그 실권주를 가신들이 인수하여 이건희에게 몰아주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자본이 자본을 불리는 방식이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삼성은 저 많은 자본을 어떻게 쌓아올렸을까. 김상봉 교수가 칼럼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에서 말하고 있듯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지 못한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할 때 가능한 일이다. 착취는 노동자의 몫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그 과정에 불법과 조작이 틈입한다. 골리앗 전사로 불리는 이갑용의 노동운동이야기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 노동자에 대한 재벌의 노동력 착취가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회사(현대중공업)는 조합원을 설득하기 위해 상여금 600%를 확정 지급해 준다. 1987년 노동조합이 생기고 4년 만에, 300% 차등지급이던 것이 600% 일괄지급으로 바뀐 것이다. 따져보면 불과 5년 만에 10년 동안 고정되어 있던 성과급이 배로 오르고, 임금도 두 배 이상, 거기에 각종 단체 협약의 인상분까지 합하면 회사가 지급해야 할 임금이 1987년보다 10배 정도는 늘어났다. 그뿐인가. 해마다 파업을 했으니 일한 날은 더 적고, 경재 붙여 시켰던 공짜 일까지 제하면 정말 회사가 망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해마다 흑자란다. 답은 그거였다. 그동안 우리가 그만큼 착취당했다는 것. 회사가 피우던 엄살은 거짓이었다는 것. 우리는 정말 바보였다는 것.” 삼성은 무노조를 목숨 걸고 사수하여 임금을 안정적으로 착취한다. 착취한 자금을 온갖 불법 로비 자금으로 동원하고, 오직 한 사람이 사유화한다. 썩은 정도가 심각하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삼성은 자기 정화능력이 없으므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하다. 반공익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반인간적인 삼성은 이미 썩은 그 무엇이다.
요즘 2MB 정부가 3대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는 소리를 연일 듣게 된다. 이런 말은 환영받아야 할 것이나 삼성과 같은 썩은 재벌을 방치한 채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한때 교육계 리틀 MB라 불리던 공정택이나 그 아래에서 출세해 보려고 몇 푼 껌 값(?)도 안 되는 돈을 들고 줄섰던 자들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는다면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며 하소연해 오지 않을까 싶다. 삼성을 두고 우리시대에는 이제 어떠한 영(令)도 서지 않을 것이다. 쇼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나는 2년여 전, 비자금 등으로 삼성이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던 때에 삼성이 “장사치”로서의 천박함을 버릴 것을 소망했었다.(http://blog.hani.co.kr/sanmoon/18525)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었고 소박한 희망사항이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난 시대에 너무나 많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몰랐거나, 알고도 모른 체 했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였거나 설마 그랬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삼성의 몇몇이 자본으로 휘두르는 권력은 국민이 선거로 뽑은 최고의 통치 권력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니 가히 삼성은 국가의 최고 권력기구라 불리더라도 과장이 아니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사람을 매수할 수 있고, 그들을 대변하는 꼭두각시 권력을 세울 수도 있고, 그 권력이 성에 차지 않으면 길들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것을 두고 혹자들이 영혼의 성장에 관한 것이라고 하지만 늘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굴 때가 많고, 기계처럼 타임벨을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고도 나는 어쨌거나 그 대가로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삼성과 나는 무관하다. 그들이 아무리 흉악한 비리를 저지르든 국가 최고 권력으로 군림하든 눈감고 지낼 수 있다. 신경을 끄면 그만이다. 삼성이 갑각류의 마스크를 하고 쇼를 하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다. 그들이 매수한 입법, 사법, 행정의 관료들이 나를 향해 간섭할 일이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의 이곳을 벗어날 가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한다. 내 딸들도 여기서 살아야 하고, 나의 밥벌이를 감당케 해 준 아이들도 여기서 살아야 한다. 저 더러운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그들이 운이 닿아 삼성의 현관에 드나들지도 모른다. 형광등 불빛이 침침하다는 삼성 공장의 복도를 걷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당장 멀쩡한 차를 팔 수는 없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내다 버릴 수도 없다. 대신 다시는 내 집 안으로 삼성의 물건을 들여놓지 않을 다짐을 했다. 지갑 안의 카드를 잘라버려야겠다. 무소불위의 국가 최고 권력 삼성의 해체 소식이 들릴 때까지 내 안의 삼성을 조금씩 지워가야겠다. 그리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읽고 이야기해야겠다. 그가 의지할 때 없어 기어들었을 때 사제단의 신부님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향해 부려놓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나누어야겠다. 나는 썩은 별이 해체될 때까지 오래 지켜보아야겠다.
요즘 2MB 정부가 3대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는 소리를 연일 듣게 된다. 이런 말은 환영받아야 할 것이나 삼성과 같은 썩은 재벌을 방치한 채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한때 교육계 리틀 MB라 불리던 공정택이나 그 아래에서 출세해 보려고 몇 푼 껌 값(?)도 안 되는 돈을 들고 줄섰던 자들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는다면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며 하소연해 오지 않을까 싶다. 삼성을 두고 우리시대에는 이제 어떠한 영(令)도 서지 않을 것이다. 쇼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나는 2년여 전, 비자금 등으로 삼성이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던 때에 삼성이 “장사치”로서의 천박함을 버릴 것을 소망했었다.(http://blog.hani.co.kr/sanmoon/18525)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었고 소박한 희망사항이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난 시대에 너무나 많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몰랐거나, 알고도 모른 체 했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였거나 설마 그랬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삼성의 몇몇이 자본으로 휘두르는 권력은 국민이 선거로 뽑은 최고의 통치 권력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니 가히 삼성은 국가의 최고 권력기구라 불리더라도 과장이 아니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사람을 매수할 수 있고, 그들을 대변하는 꼭두각시 권력을 세울 수도 있고, 그 권력이 성에 차지 않으면 길들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것을 두고 혹자들이 영혼의 성장에 관한 것이라고 하지만 늘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굴 때가 많고, 기계처럼 타임벨을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고도 나는 어쨌거나 그 대가로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삼성과 나는 무관하다. 그들이 아무리 흉악한 비리를 저지르든 국가 최고 권력으로 군림하든 눈감고 지낼 수 있다. 신경을 끄면 그만이다. 삼성이 갑각류의 마스크를 하고 쇼를 하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다. 그들이 매수한 입법, 사법, 행정의 관료들이 나를 향해 간섭할 일이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의 이곳을 벗어날 가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한다. 내 딸들도 여기서 살아야 하고, 나의 밥벌이를 감당케 해 준 아이들도 여기서 살아야 한다. 저 더러운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그들이 운이 닿아 삼성의 현관에 드나들지도 모른다. 형광등 불빛이 침침하다는 삼성 공장의 복도를 걷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당장 멀쩡한 차를 팔 수는 없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내다 버릴 수도 없다. 대신 다시는 내 집 안으로 삼성의 물건을 들여놓지 않을 다짐을 했다. 지갑 안의 카드를 잘라버려야겠다. 무소불위의 국가 최고 권력 삼성의 해체 소식이 들릴 때까지 내 안의 삼성을 조금씩 지워가야겠다. 그리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읽고 이야기해야겠다. 그가 의지할 때 없어 기어들었을 때 사제단의 신부님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향해 부려놓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나누어야겠다. 나는 썩은 별이 해체될 때까지 오래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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