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스님들이 평상 위에 가사로 덮은 법정 스님의 법구를 운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법정 스님 입적] 길상사 떠나던 날
조문객 “마지막까지 무소유” 눈물
조문객 “마지막까지 무소유” 눈물
12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행지실 앞. 목탁 소리, 금강령의 종소리와 함께 법정 스님의 법구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갑자기 세차게 불었다. 행지실 앞에 모여 있던 100여명의 조문객들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법정 스님은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였다. ‘관을 짜지 말고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올려서 화장하라’는 유지에 따라 작은 평상 위에 법구를 모시고, 얇은 갈색 가사 한 장만 덮었을 뿐이었다. 조문객 김미하(56)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무엇 하나 가지지 않고 가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법구는 행지실 작은 문을 나서 경내 극락전에 도착했다. 법구를 모신 평상을 든 10명의 스님들은 극락전 앞에서 무릎을 세 번 구부렸다 펴서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렸다. 이어 법구는 영구차에 모셔졌다.
이날 4000여명의 불자, 조문객들이 길상사 경내를 가득 메우고 “나무아비타불”을 외며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영구차는 오전 11시40분께 스님이 오랜 세월 머무른 전남 순천 송광사로 출발했다. 박아무개(42)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무소유>, <말과 침묵> 등 스님의 책을 읽었는데 그동안 스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산 것 같아 너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길상사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 진화 스님은 “법정 스님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무엇도 하지 말라고 유지를 남기셔서 부의금 등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오셨다 가시고 있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의 정토회관을 비롯해 대전의 백제불교회관, 광주의 태현사, 경남 창원시의 성주사, 전남 보성군의 대원사 등 전국 곳곳에 자발적으로 분향소가 마련됐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길상사 분원과 미국 뉴욕의 사암연합회에도 분향소가 차려졌다.
이날 오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정길 대통령실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길상사를 찾아와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분향 뒤 “평소에 존경하던 분이었고, 저서도 많이 읽었는데 마음이 아프다”며 “살아 있는 많은 분들에게 큰 교훈을 남기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13일 순천 송광사에서 독경마저도 생략한 채 조촐하게 치러지며, 17일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길상사에서 초재~6재가 치러진다. 49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열린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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