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판만 덩그러니… 어린이들이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초등학교 근처 새싹3길에 있는 어린이안전지킴이집 안내판 옆을 걷던 중 트럭이 다가가자 길 한쪽으로 비켜서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신림동 ‘아동안전 지킴이집’ 10곳 가보니
2008년 의욕적 출범 불구 학생들 “어디 있는지 몰라”
올해 예산마저 2억 삭감…밤·휴일엔 문닫는 곳 많아
2008년 의욕적 출범 불구 학생들 “어디 있는지 몰라”
올해 예산마저 2억 삭감…밤·휴일엔 문닫는 곳 많아
“아동안전지킴이집이요?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요.”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초등학교 앞. 어른 허리만한 높이로 ‘아동안전지킴이집’(안전지킴이집)이라고 쓰인 노란색 안내판이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 벽 쪽에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길을 지나가던 김아무개(11·초등5)군은 안전지킴이집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드문드문 주민들이 지나갔지만 간판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경찰이 어린이 납치·성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해 2008년 4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안전지킴이집이 정작 어린이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안전지킴이집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의 주요 이동경로에 있는 문구점, 편의점, 약국 등에 마련한 것으로 전국에서 2만5000여곳에 이른다. 어린이들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안전지킴이집으로 뛰어들면 업주가 경찰에 신고해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아이들은 안전지킴이집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활용할 뜻이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임아무개(13·초등6)양은 “학교에서 안전지킴이집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찾아가고 활용해야 하는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아무개(12·초등6)양도 “들어는 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무작정 모르는 가게를 찾아가는 것보다 엄마한테 연락하는 게 낫다”고 했다.
경찰이 안전지킴이집을 선정한 뒤 업주에게 금전적 보상 없이 일을 맡기기 때문에 해당 업주들의 관심도 높지 않았다. 경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올해 안전지킴이집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2억원 줄여 4억5000만원으로 잡았다.
신림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유아무개(57)씨는 “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되고 2년 가까이 흘렀지만 딱 한 번 아이들을 때리려는 중학생들을 혼낸 적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ㅅ약국 주인 박아무개(61)씨도 “장사를 하다 보니 한가할 때 밖을 쳐다보며 주변 상황을 살피는 정도”라며 “근처 지구대와 연결된 직통전화가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직접 신고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가게가 문을 닫는 밤 시간대나 휴일에는 무용지물이다. 휴일인 이날 신림초등학교 주변에서 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된 10곳을 살펴보니, 절반인 5곳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이 제도 시행 후 지난해 10월까지 210명의 아동에 대한 폭력·실종 사건을 예방했고 성추행범을 30명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홍보를 위해 안전지킴이집에 대한 만화 동영상 1000개를 만들어 지난 연말에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이경미 김연기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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