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해·살해 혐의도 인정
“범행 과정은 기억 안난다”
“범행 과정은 기억 안난다”
부산 여중생 이아무개(13)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씨가 검거 엿새째인 15일 납치와 성폭행, 살해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과정에 대해선 여전히 “술에 취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해 범행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 ‘목격자 진술’ 등 추가 증거 확보 경찰은 지난달 24일 자정 넘은 시간에 김씨가 이양의 주검을 버리는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이날 밝혔다. 또 경찰은 이양의 주검을 버리는 데 사용한 시멘트 가루가 묻은 면장갑과 검은색 후드점퍼 등 증거물을 추가로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은 “당시 목격자가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6일 이양의 주검이 발견된 뒤 경찰서에 와 이 사실을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16일 이양의 집과 김씨의 범행 장소 및 검거 직전 숨어 있던 빌라 옥상 등지를 중심으로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김씨가 이양 집에 침입한 과정과 구체적인 납치·살해 방법 등에 대해 추가 조사하고 보강증거를 확보한 뒤 19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 “무당집에서 성폭행 뒤 살해” 김희웅 부산 사상경찰서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피의자 김씨가 ‘이양이 성폭행 당시 소리를 질렀고, 그것을 막는 과정에서 손으로 입을 막아 살해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김 서장은 “김씨에게 이양에 대한 부검 결과를 말해 주자 김씨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괴로워하며 자백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전날 거짓말탐지·뇌파탐지 검사 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해 밤에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과 면담한 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으며, 조사과정에서 좋은 관계를 가져온 박명훈 경사를 불러달라고 해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 살해 시점과 관련해 경찰은 “김씨가 이양이 납치됐던 지난달 24일 덕포동 당산나무 근처 바위에서 소주 3~4병을 마시고 또 근처 슈퍼마켓에서 소주 1병을 더 사 마신 뒤 덕포동 일대를 돌아다녔다고 말했다”며 “김씨 진술로 보면 지난달 24일 밤 이양을 납치해 무당집에서 성폭행하고 곧바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납치 과정에 대해서는 “김씨가 당시 술에 취해 이양을 유인했는지 강제로 끌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며 “이양 집에서 발견된 발자국 등으로 미뤄 김씨가 다락방 창문을 통해 이양 집에 침입한 뒤 범행장소로 끌고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 피의자 김씨가 범행을 시인했다고는 하나 그의 진술과 행적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김씨가 범행 당일 그가 말한 평소 주량(소주 1병)의 4~5배 되는 소주를 마신 만취상태에서 다락방 창문을 뛰어넘어 이양 집에 침입하고, 이양을 근처 빈집(무당집)으로 끌고 간 뒤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진술은 상식적이지 않다. 만취상태에서는 이런 주도면밀한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주검을 버리는 과정에서 보인 용의주도함도 만취상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찰은 김씨가 술에 만취해 지각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내세워 범행이 계획된 것이 아닌 우발적인 것이었음을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만취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행동양상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에게 의학적 소견을 묻고 보강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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