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변화를 위한 연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행사 준비를 위해 몇몇 분들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호남향우회의 예전 회장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말씀 하나가 영 마음에 그냥 남아 버립니다.
"호남이란 이름을 걸면 될 일도 안돼 버립니다. 그래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저희가 개인적으로 밀어드릴까 합니다."
호남이란 이름이 박해와 탄압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히 과거 박정희와 김대중 후보가 대선으로 붙었을 때입니다. 이때 중앙정보부는 직접 반 호남 정서를 심기로 작정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도 사실 그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것이 오늘날 호남 출신 분이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숨어야 하는' 현실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것은 정말 마음아픈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진보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만큼은 마음 안에 그런 생각을 추호도 갖지 말아야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가슴 안에 혹시 그런 차별의식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나름으로 해 보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로서, 저는 '주류가 아닌 사람'으로서 알게 모르게 주류 백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해 본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인종 차별 자체를 범죄로 여기는 이곳의 분위기 때문에, 적극적인 차별의 방식으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는 그같은 차별들이 더욱 지독하고 피해자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듯 합니다. 한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을 만들고 겪는 차별의 아픔이라던지, 그들의 죄 없는 2세들이 겪어야 하는 왕따의 모습이라던지, 이주노동자들의 아픔 같은 것은 쉽게 무시되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는 스스로 진보임을 외치는 사람들마저도 이들 이민노동자들을 자본이 고용한 주구라 하여 대놓고 무시하고 그들의 인격을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진보로서의 정체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가끔씩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세화선생님이 전에 지적하신대로, 우리는 지독한 섬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그 분단은 우리를 섬으로 만들어 놓았고, 지리적인 섬 뿐 아니라 정신적인 섬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고립무원의 섬 안에 갇힌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 안 되는 리소스를 서로 쟁탈하기 위해 싸워 왔고, 그나마 왜곡된 역사는 거기서 만들어 놓았던 강요된 계급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시스템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전투구 하는 법만을 배워 왔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해 이민 노동자들 뿐 아니라 같은 민족 구성원에 대해서도 차별의 등급을 두는 더러운 시스템이 되었고, 저는 어제 만났던 그 호남향우회 관계자 분의 자조적인 말 한마디로 그것을 다시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미국에서 '사회적인 약자'의 위치에서 산다는 것 때문인지, '인권'이란 것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기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종이라는 문제 때문에 사회적 약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겐 진정 약자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경험들을 우리의 실생활 안에 녹아내려 타민족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저는 그렇게 자리매김된 제 자신을 보며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더 쉬운 듯 합니다. 그런 것을 돌아보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다 겸허한 자세로 진정한 연대를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 혹시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어떤 식의 차별의식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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