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51)씨
대구서 ‘우토로 사진전’ 여는 임재현씨
‘30여년 만에 내린 폭설로 마을 전체는 원근감 없이 오직 한 빛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우토로의 첫 풍경은 적막 그 자체였다.’ 임재현(51·사진)씨는 2003년 겨울,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를 처음 찾았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우연히 한 일간지에서 ‘우토로 주민들이 강제이주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본 뒤, 그는 우토로로 빨려들었다. 1941년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 징용돼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해방이 됐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황무지에 양철로 엮어만든 함바집 주변에 모여살았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온 그들이 이제는 그 삶의 터전에서 마저 쫓겨나게 됐단다. 땅주인이 우토로 주민들 몰래 마을 전체 땅의 절반을 우리돈 40억에 팔기로 한 것이다. ‘강제이주 위기’ 안 뒤 8년간 20여번 찾아
“사진으로 아픈 역사·현재 삶 소개하고파” “그동안 고달픈 우토로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미안했고, 알게 된 이상 그 현장을 기록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씨는 8년에 걸쳐 20여 차례 우토로를 찾았다. 마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처음에 어느 할머니는 텃밭을 가꾸다 그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흙묻은 상추를 그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한국서 뭐하러 왔냐’며 내쫓았다. 그렇게 냉랭하던 주민들도 해가 거듭되면서 그의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없이 웃게 됐다. 대전이 고향인 할머니는 그가 방문할 때마다 ‘고향사람 왔냐’며 손을 꼭 잡고 고향 소식을 묻고 또 물었다. 사나흘씩 머무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그의 손에 꼬깃꼬깃한 일본 지폐를 쥐어주는 할머니도 있다. 2005년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져 우토로에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소외된 우토로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한국 정부의 지원금과 모금을 합해 40억원이 모아졌다. 우토로 땅의 절반을 주민들의 몫으로 사들였다. 그 사이 임씨는 <우토로 사람들>이라는 사진집을 냈고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아직도 우토로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며 “사진을 통해 우토로의 아픈 역사와 더불어 오늘을 사는 그곳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6~21일 대구시 중구 대구봉산문화회관에서 ‘우토로 사람들 그 이후’ 사진전을 연다. 그는 “우토로 덕분에 정신대 할머니들과 사할린 동포들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마흔 살에 사진공부를 시작한 그에게 우토로는 사진작가의 길을 터준 셈이다.
‘적막 그 자체’였던 우토로가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사진 전시실 맨 마지막에 걸린 작품을 가리켰다. 책가방을 맨 우토로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가고 있었다. 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