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배제하고 강행, 최소한의 예의 잃어” 강한 유감
한나라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의 ‘사법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데 대해, 대법원이 18일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을 잃은 처사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대법원은 특히 헌법의 3권 분립 정신이 침해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례적으로 여당의 법 개정 시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7일 발표된 한나라당 개선안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밝혔다. 박 처장은 성명서에서 “최고법원의 적정한 구성과 사법부의 자율적 인사운영은 사법부가 독립성을 지키고 헌법상 책무를 다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며 “이런 사항을 다듬고 고쳐나가는 일은 마땅히 사법제도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법부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이어 “국회나 행정부가 사법제도의 개선을 논의할 때도 3권 분립의 대원칙과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며 “최근의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진행 방식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의 이런 태도는 판사의 재임용과 대법관 임명은 물론 판사들의 보직 배치에까지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겠다는 여당의 구상에 대한 완강한 반대로 받아들여진다.
박 처장은 특히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처사는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나라당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은 지난 17일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4명으로 늘리면서 3분의 1을 비법관 출신으로 기용하고, 판사의 재임용과 보직 배치, 대법관 추천에 법무부 장관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추천 인사 등 외부인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안을 확정·발표했다. 또 현재 대법원 소속 독립기구인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고, 여기서 양형기준법을 만들어 판사들의 형량 산정을 통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원 쪽에서는 정부·여당·검찰의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변호사업계의 이해가 반영된 안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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