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일제 식민통치 35년, 해방과 분단, 민족상잔의 전쟁, 쿠데타와 군부독재, 학살과 항쟁.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지난 100년은 역사상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기에 온갖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던 혼돈과 모색의 시기였습니다.
이같은 시기에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반세기에 걸쳐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온 민주화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이같은 혼돈의 한 가운데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극복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치열한 모색의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흔히 역사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재구성된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혹은 무엇을 보고자 하는 가에 따라 역사는 그 의미를 달리하며, 때로 기억 자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기억을 흐리게 하며, 가끔은 기억의 근거 자체를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되살리는 작업, 바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불충분한 민주화를 지적하며 아직은 기념할 때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완성이 없다면 민주화운동 또한 그 끝이 없을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단순히 웅장한 건축물을 짓는 일이 아닙니다. 기념관 건립은 민주화운동을 통해 이룩한 우리들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인식함으로써 민주주의가 또 다시 후퇴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통해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빛나는 민주화투쟁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통해 보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전진하느냐 아니면 과거로 회귀하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은 민주화를 꿈꿔왔던 모든 이들이 함께 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인 동시에 또 다른 형식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더불어 한국민주화운동이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듯이 기념관을 만드는 일 또한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한국의 민주화투쟁은 세계전쟁과 냉전해체 이후 제3세계 많은 나라들이 민주화로 들어서게 만드는 불씨의 역할을 했습니다. 세계 민중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희망으로 존재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기념관 건립이란 또 하나의 전범을 창출한다면 이는 흔들림 없는 민주화의 성과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실증적 증거로 세계에 비춰질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이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듯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여전히 멀고 험한 길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우리 국민에게는 이를 향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후대에 전해지고,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과 성취 모두가 국민적 자부심으로 승화되는 그 곳에서 환호성을 터뜨리는 날을 그리며 오늘 우리는 국민과 더불어 새로운 민주화의 길을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민주화의 길에 헌신했던 모든 분들, 뜨거운 성원과 지지로 민주화운동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이룩한 국민 모두에게 한없는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5. 6. 10 박 형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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