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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되돌아보는 6월민주항쟁의 의미

등록 2005-06-09 23:46수정 2005-06-09 23:46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주의체제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통상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일대 전환으로 평가된다. 물론 6월항쟁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력 주도의 정부 수립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 권위주의세력의 영향력은 여전히 온존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평가는 상당 정도 절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은 새 정부의 등장이 실질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국민 의사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행을 가능하게 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름 지금, 우리는 6월 민주항쟁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의미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근대화 또는 근대적 발전이라는 견지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근대화란 단순히 산업화만을 의미하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 직후의 국가형성,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6월항쟁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광의의 의미의 근대화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사회의 근대적 발전 속에서 6월항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해방 직후 남한 국가의 형성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냉전 심화의 상황 속에서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위로부터 반공체제가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국가형성의 이 같은 성격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은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제약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의 반공독재와 이에 뒤이은 박정희 개발독재는 반공과 경제발전의 기치 하에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지체시켰다.

즉 해방 이후 반공국가의 형성과 이에 바탕을 둔 반공독재 및 개발독재의 전개는 한국사회의 근대화를 ‘민주주의가 결핍된 근대화’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미군정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의 제도가 주어진 바 있었고, 4․19혁명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최초의 아래로부터의 계기를 제공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의 본격적 전개를 야기시켰던 것은 60-7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뒤를 이어 마침내 1987년에 분출했던 6월항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6월항쟁은 위로부터 그 제도만이 형식적으로 주어졌을 뿐, 냉전과 권위주의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았던 한국적 상황에서 진정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민주혁명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또한 6월항쟁은 한국사회의 비민주적․물량적 근대화가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6월항쟁은 한국에서 비로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에 따라 민주주의적 근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6월항쟁이 갖는 이 같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행 이후 그것이 기대했던 만큼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6월항쟁이 비록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 이행의 결과는 ‘보수적 민주화 이행’에 그쳤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시 양 김씨의 분열에 따른 민주화운동진영의 분열로 인해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구(舊) 권위주의세력이 합법적으로 집권하게 됨으로써 권위주의 유산의 실질적인 청산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민주화 이행이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침으로써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우리는 민주화 이행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정치의 전면 등장 속에서 노동의 정치참여 또는 진보적 정치세력의 제도권 정치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반공주의에 의해 구조화된 채 보수세력 또는 보수적 중도세력만이 제도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반쪽의 보수적 정치지형은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행과 관련하여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것이 경제적 민주주의를 크게 강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미 민주화 이행의 타협 과정에서부터 노동문제를 포함한 경제적 사안에 대한 논의는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행 이후에도 복지 등 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 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경제적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더 악화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불평등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의 과정에서 다시 한번 경제적 불이익을 강요받게 될 때,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화 이행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6월항쟁의 의미를 되집어본다면, 그것은 탈권위주의의 한국 민주주의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전환적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민주화 이행 이후의 민주주의의 커다란 발전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6월항쟁은 한편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헌신과 열정을 새삼 기억하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후 역사 발전으로 제대로 이어내지 못했던 아쉬움의 감회 또한 함께 남긴다.

정해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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