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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불탄 자리에 깃발을 꽂다 [이소선 1-상]

등록 2005-06-09 23:52수정 2005-06-09 23:52

며칠째,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젊은 이소선. 그는 슬퍼한다기보다는 아파하고 있다. 물리적인 통증을 거의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혹시 그는 스물두 살의 전태일을 낳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담대해지세요, 어머니…….’

자기 몸에 불을 낸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

시인 박노해는 또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어머니를 낳고


영별의 순간, 이소선의 내부에서는 자식과의 영별을 담대하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어머니와 자애로운 미소 속에 ‘적’을 감춘 어머니가 한판의 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김남주, 『고난의 길』)’는 그 싸움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한 여성이 ‘고난 받는 어머니’에서 ‘고난 받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 한 사람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혹독한 과정이었다.

아들이 불탄 자리에 깃발을 꽂고,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야 하는 그 길이 어찌 쉬웠으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이소선은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함께 먹고사는 일 자체가 전투인 가난한 홀어미에 불과했다. 일제 암흑기에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여성이 이 땅에서 겪을 수 있는 시련이란 시련은 모조리 겪으며 살아왔지만, 자기 앞에 이런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길’을 열어 준 것은 사랑하는 아들 전태일이었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과 팔다리가 다 굳어져 송장같이 되어버린 아들을 보고 이소선은 자기의 생명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때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내 죽음을 원통하게 생각지 마시고 어둠 속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어린 동심들에게 햇빛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 어린 근로자들을 나로 생각해 주시고 그들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주세요.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 주세요. 하시겠지요?’

“뭔 소린지도 모르고 듣고만 있으니까 ‘하겠지요? 꼭, 꼭!’ 하면서 큰소리로 대답하라는 거야. 금방 죽는데 어떻게 크게 대답을 하겠어. ‘꼭, 꼭!’ 하는데 화기가 올라와서 끓으니까 의사가 (목에) 네모 칸을 잘랐어. 거기서 피가 퐁퐁 솟아나오는데 어휴,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해.”

이소선은 눈물을 삼키며 아들 앞에 큰소리로 맹세했다.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전태일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 겨우 눈을 감았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배가 고프다…….’ 이소선은 혼절하고 말았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어

다시 깨어났을 때, 이소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당국에 청계피복 노동조합 결성과 근로조건 개선 등 8개항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들 태일이 생전에 ‘못다 이룬 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소선은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고 버텼다.

“영혼은 이미 죽어 여기를 떠났는데 그까짓 고깃덩어리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시체를) 동강동강 내서 내 치마에 싸가지고 이 산에다 한 덩어리 묻고 저 산에다 한 덩어리 묻는 한이 있어도, 당신들 보고 장례식 해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다 꺼지라고 했어.”

이소선은 운동권 학생을 비롯한 재야 민주 세력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의심은 커녕 처음 만난 장기표를 부둥켜안고 ‘왜 이제야 왔느냐. 태일이가 그렇게 대학생 친구를 찾았는데’ 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소선이 아들의 장례식을 학생장으로 치르기 위해 서울대 학생들에게 시신을 인계할 뜻을 밝히자, 노동청에서는 이소선을 회유하기 위해 당시 ‘빌딩 한 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소선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돈 좋아하는 놈들 이 돈 다 가져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그 돈의 일부를 영안실 바닥에 뿌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청계피복 노조가 서게 된 것이다.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온 빈민가의 여성이 남은 자식들과 한 평생 편안히 살 수 있는 돈을 거절한다는 것. 어떤 사람들에겐 아예 불가능한 그 일이 이소선에게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양심에 거리낌 없는 일을 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그 일을 설명했다. 지금도 그이는 지난 35년 동안 자신이 해 온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로 당국의 끈질긴 회유를 단호히 물리친 것을 꼽는다.

* 김 기 선

1965년 서울 출생.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저는 열네 살 선영이에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대의 불꽃> 중

『전태일』·『김진수』·『최종길』 편 발표.

현재 격월간 『삶이 보이는 창』의 기획위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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