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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골목골목 예술의 향기 ‘서촌의 재발견’

등록 2010-03-22 09:39수정 2010-03-22 11:04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형성된 서촌은 조선 시대와 근대의 도시 구조와 건물들이 살아 있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서촌 전체가 옛 동네로서의 정취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형성된 서촌은 조선 시대와 근대의 도시 구조와 건물들이 살아 있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서촌 전체가 옛 동네로서의 정취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경복궁 서쪽 중인·화가·문인들 산실…북촌과 다른 독특한 매력
서울시-주민들, 한옥보존 갈등…“섬 아닌 조화로운 곳으로 가꿔야”
돌을 길게 다듬어 만든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낯선 모양의 전봇대가 보였다. 일반 전봇대의 절반만한 크기에 몸통이 짙은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전봇대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긴 못을 구부려 군데군데 박은 점도 특이했다. “일제 때에 만들어진 삼나무 전봇대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네요.” 지난 18일 종로구 옥인동 송석원길에서 취재에 동행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이 말했다.

계단을 다 오르니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이 보이는 한옥들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펼쳐졌다. 낮은 지붕 위에 얹혀 있던 기와를 들춰보니 안쪽에 삼베 무늬가 찍혀 있었다. 황 위원장은 “서촌에 몇 안 되는 조선 후기의 기와 양식”이라고 말했다. 서촌에 있는 663채의 한옥은 대부분 1910년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이른바 개량 한옥들이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 ‘서촌’이라는 별칭을 얻은 종로구 옥인동, 체부동, 필운동 일대가 새로운 역사·문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촌은 한옥이 집중적으로 밀집돼 있는 북촌과 달리 한옥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건축물이 얽히고설켜 있는 곳이다. 특히 서울시가 지난 3월10일 서촌의 한옥과 골목길을 보전하는 내용의 ‘경복궁 서측 제1종지구단위계획안’을 통과시키면서 북촌과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서촌을 앞으로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북촌이 조선시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것과 달리 서촌은 의학·천문학·지리학 등을 전공한 조선의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서촌에 살고 있는 황두진 건축가는 “서촌은 전통적 양반 마을인 북촌보다 도시생활이 많이 이루어졌던 곳”이라며 “궁궐에 물품을 납품했던 기관이나 공방들도 많았는데 이런 역사적 맥락을 잘 살리는 쪽으로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촌은 구석구석에 예쁜 카페나 작은 갤러리, 예술인들의 작업실, 오래된 헌책방 등이 있어 종로구의 ‘걷기 좋은 골목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촌은 또 조선시대와 근대의 문인, 건축가, 화가의 산실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서촌에 살았고,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모윤숙, 작가이자 건축가였던 이상 등이 서촌 주민이었다. 서촌에는 이들이 살았던 집과 작업실이 적잖이 남아 있다. 작년 9월에는 옥인동 185번지에서 정선의 그림 ‘수성동’에 등장하는 돌다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동네로 보존해 나가는 것보다 그냥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옥인동은 이미 재개발 조합이 결성돼 있고, 체부동·누하동·필운동에는 몇 년 전부터 재개발 조합 추진위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체부동 곳곳에는 1년 전부터 ‘체부동 주민은 아파트를 원한다’는 펼침막이 걸렸다. 박경식 누하정비예정구역 추진위원회 총무는 “설계비 등 이미 들어간 돈도 많은데 서울시의 한옥 보존 정책으로 개발이 전혀 진행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8일 둘러본 서촌은 낡고 지저분한 건물과 골목도 많았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번듯한 앞길과 달리 쓰레기로 뒤덮인 뒷골목들이 많아 동네 보존에 애착이 없는 주민들도 있다”며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동네 전체에 초점을 맞춰 ‘찾아오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한옥뿐만 아니라, 1940~60년대 지어져 당시의 주거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도 함께 보존해야 동네의 가치가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평우 위원장도 “서촌에 남아 있는 한옥, 문화재를 하나의 섬처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촌 전체가 조화로운 동네가 될 수 있도록 가꿔 나가야 한다”며 “개발 이익 대신 관광 이익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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