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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좁은 길의 문법, 혹은 무상급식

등록 2010-03-22 14:25

나의 퇴근길은 좁은 골목이다. 그 폭이 좁아서, 갓길에 주차한 차라도 있으면 속도를 줄여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통행하는 차들의 편의를 위해 가끔 구청에서 방송을 하거나 불법 주정차 스티커를 붙이면서 요란을 떨기도 하지만 행정의 손길은 보다 편리하게 단속할 수 있는 큰길을 고집하는지, 어쩔 수 없는 불법이어서 은혜로운 자비를 베푸는 까닭인지 좀체 뵈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오가는 차들이 엉키어서 긴 정체의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가 있다.

차를 몰고 재개발 아파트 신축 구간을 지나 성당의 높은 담과 인쇄소 건물들이 마주보고 있는 입구쯤에 다다랐을 무렵에, 나는 진행 방향 저 앞에 서있는 두어 대의 차를 만났다. 맞은편에서 달려 온 차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형국이었다. 막힌 그 지점의 갓길에는 흰색의 주차선이 그어져 있고, 길게 일렬로 주차한 차들 사이에 다소 큰 짐차 한 대가 삐죽이 몸을 내밀고 있었으므로 빠져나가기가 더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진행 방향의 맨 앞 차는 택시였다. 갈 길이 바빴는지 창문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운 왼팔이 오르내리고 택시 운전자는 고함을 질렀다. 반대편의 은회색 자가용 운전자도 맞장구를 치면서 소란이 컸다. 조금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잠깐 동안 내 뒤로 차들은 꼬리를 물었고 경적을 울려대었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아마 맞은 편 길에서 달려 온 저 차 뒤로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리라.

고함을 지르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 와중에 핸들을 좌우로 꺾으면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역부족이었다. 무리를 가하는 듯 보였으나 그의 차 오른 쪽 앞바퀴는 가게 앞의 진입 방지 턱을 넘지 못하였다. 그런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의 눈에는 차들이 막혀 긴 행렬을 이루게 된 책임이 고스란히 택시 운전자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은회색 차와 택시가 지나려면 최소한의 틈이 필요할 터인데, 그 틈을 택시 기사의 몸부림으로 확보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책임이 저절로 은회색 차의 운전자에게 떠넘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 눈에 띈 그 은회색 차의 오른편, 그러니까 짐차가 서 있는 편의 틈은 너무 넓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은회색 차의 운전자는 너무나 태연하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그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움쩍 않고 버티면서 핸들 한두 번을 조작하지 않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듯 택시 운전자는 급하였던지 차에서 내렸다. 소리를 너무 많이 질러버렸을까. 백발의 그는 아무 말도 않고 은회색 차 앞을 가로 질러서 짐차와 틈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웃으면서 차 안의 젊은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던 은회색 차의 운전자에게 내리라는 시늉을 손짓으로 하고, 그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앉더니 쉽게 차를 앞으로 옮겨서 내 차 바로 옆에까지 가져다 놓았다. 그가 잘난 체 한 것은 아니지만 은회색 차의 운전자가 머쓱해하면서, 뭐라고 말을 하였는데 나에게까지 그 몇 마디가 들리지는 않았다. 그 표정과 몸짓이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운전 실력이 미숙하여 그랬다’거나, ‘오른쪽에 그렇게 많은 공간이 비어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각자의 차에 다시 오르자, 갓길의 짐차가 여전히 주차해 있었으나 좁은 골목길의 차들은 저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 막힌 곳을 벗어나 지나는데, 이십 여 대의 차가 길게 늘어서서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길이 뚫렸으니 그들도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퇴근길의 좁은 골목을 관통하면서, 이 길이 왜 막혔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한 사람의 운전 미숙이거나 배려의 부족이거나 원인은 결국 사람에게 있었다. 그러나 다시 톺아보면 내 눈 앞에서 길이 막혀 모두가 멈추었던 것과, 막혔던 길이 뚫려 모두가 내달리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이치가 아니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원래 길은 갓길에 한 대의 차가 주차하는 것을 허용하고도 두 대의 차가 웬만하면 교차하도록 설계되었거나 계획되었으리라. 아니 본래의 길에 한 줄의 주차를 허락하고도 두 대의 차가 지나는 것이 가능하므로 그렇게 허용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의 폭은 그 위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주어진 임의의 공간이기도 하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 공간은 순간적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확장되거나 축소될 가변성이 없는 것이다. 어떻거나 좁은 골목에 들어선 자들은 자기의 갈 길을 가되,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만큼만 차지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단순한 과오이든 세상살이의 지혜 부족이든 누군가 타자의 공간 영역을 침해하는 순간 길은 막히고 정체는 시작된다. 양보나 배려와 같은 도덕적 관념이 개입되지 않더라도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 꼬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에 관한 당연한 권리가 방해받고 침해될 때, 누군가 나서서 양보나 배려로부터 멀어져있는 견고한 벽을 억지로 옮겨놓아야 했던 것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양보이거나 배려가 아니다. 길 위를 달리는 자가 인간에게 갖추어야 할 마땅한 예의인 셈이다. 길의 문법인 셈이다.


좁은 골목길은 당분간 확장될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눈비가 오나, 붐비거나 그 길 위로 속도를 줄이면서 다녀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생각에도 이르게 된다. 이 좁은 길을 관통할 때에는 내 눈에서 가까운 틈만을 살필 것이 아니라 내 눈에서 먼 쪽의 여유도 살펴야 한다. 살피기가 어려운 먼 곳의 틈이 지나치게 넓을 때에는 나의 길도 막히고 상대방의 길도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틈에 관한 계량의 오류이든 운전에 관한 기술적 미숙에 의한 것이든 나의 무지가 가뜩이나 좁은 길의 소통을 막게 될 것이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파이(Pie)는 늘 일정하고, 그 파이를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생각들은 여전히 복잡하다. 혹자는 아직 파이가 적다고 하고, 더 큰 파이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한다. “국제화, 세계화, 글로벌화, 선진화” 등의 구호는 더 큰 파이를 만들려는 이들의 눈물겨운 호소이다. 그 호소가 사뭇 진지하였으므로 어두울수록 높은 곳에 등을 내 걸듯 사람들은 다소곳이 참고 견디었다. 그러고도 사람들은 한참을 더 달려왔다. 더 큰 파이를 고집하는 이들에게 성장은 지극히 당연하고 숭엄하기조차 하므로 파이를 나누는 일은 마땅히 유예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들의 배는 여전히 고프고, 그들의 길은 좁은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달리는 길 위에서 그들이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무지한 것이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몰고 가는 차의 조수석 바깥 공간이 지나치게 넓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은 그들의 욕망과 부가 타자의 길을 침해한 것처럼 지나친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에게 학비지원신청서류를 받았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기초수급자도 아니고, 한부모 가정도 아니고, 의료보험비도 턱없이 많이 내는 터라 1년에 120여만 원 정도 되는 학비를 지원받을 수 없겠느냐고 호소해 왔다. 거동이 불편하며 연세가 여든넷인 시아버지가 있고, 남편은 몇 년 전 뇌출혈로 손이 떨려서 화물 용달차 한 대를 몰고 나가긴 하나 기름 값도 못하는 날이 더 많고 끼니를 거르고 차에서 자기도 한다면서 의료보험 수가만 높이는 차가 오히려 원망스럽다고 하고, 간병하는 틈틈이 부업을 하고, 월말이 되면 독촉장들이 날아들고, 대학을 다니는 딸은 교재를 친구한테서 빌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연을 아이의 손을 빌려서 적어 보내왔다. 또 어떤 어머니는 사정을 말하고서 그 끝에 “선처해 달라”고 적었다. 그 말의 보이지 않는 여백에, 가난을 죄처럼 여기고 있는 그늘이 서리어 있었다. 나는 몇 푼의 학비를 다만 신청하고 그것이 아이에게 내려오기를 기다릴 뿐, 감히 선처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을 … 엎드린 어머니들의 무릎이 시리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무상급식을 폄하하는 수많은 말들의 복잡함 속에서 나는 본다. 좁은 길을 달려가는 우리들의 길 위에 일방적으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짙은 금을 긋는 오류와 무지를 본다. 그리고 다시 좁은 골목길을 본다. 기다리다 보면 막힌 길은 뚫리기 마련이고,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인 것을.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움도 본다.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그 웃음처럼 좁은 길의 문법을 알고 있을, 오류와 무지 너머에 있는 그 어떤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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