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한겨레 시민포럼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정희준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장(동아대 교수·가운데)이 ‘지성의 굴욕, 대학사회 얼차려!’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6차 한겨레시민포럼
‘교수보다 선배한테 더 깍듯하게 인사하는 대학생.’
제26차 한겨레시민포럼이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지성의 굴욕, 대학사회 얼차려!’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장)는 대학사회에 만연한 폭력문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정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사회의 폭력문화를 샅샅이 해부했다. 그는 “선후배 대면식에서 선배가 하급생에게 얼차려를 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상당수 교수들이 묵인을 넘어 이를 지지한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폭력문화는 대학 내 운동부뿐 아니라, 예체능계, 의대, 공대 등 공동작업이 필수인 분야에서는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특유한 ‘얼차려 문화’가 유독 한국 대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화기에 외국 문물을 접하면서 열등감을 느낀 조선의 지식인들이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는 인식을 했고, 결국 이것이 콤플렉스로 작용해 학교가 획일적 집단주의를 전파하는 장소가 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집단주의와 ‘힘’에 대한 선망은 이후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열쇳말이 됐다”고 말했다.
또 정 교수는 ‘캠퍼스 폭력’을 유지시키는 연결고리로 ‘예절’을 꼽았다. 그는 “예절은 위계질서를 보장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폭력을 촉발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며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 일에서 보듯, 예절이 폭력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부문 차장은 이달 초 국회에서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발의된 ‘학교체육법’이 무산된 예를 들면서, 대학 내 폭력문화가 한국 사회의 수준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대학 내부의 책임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며,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도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의 폭력문화를 겪은 시민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김태중(52)씨는 “중학교 때 체육부 폭력을 목격한 뒤로는 운동경기조차 보기 싫어질 정도였다”며 “학교 내 폭력에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체육대 학생이라고 소개한 정아무개(25)씨도 “신입생 시절 억지로 술을 마시는 등 선배가 시키면 무조건 해야 했다”며 “이런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보는 사회적 방관이 대학의 폭력문화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동영상 hani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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