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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명성황후 시해 칼, 반환운동 나섰다

등록 2010-03-25 19:49수정 2010-03-25 21:28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칼로 알려진 ‘히젠토’. 칼집에 ‘늙은 여우’(명성황후)를 단칼에 찔렀다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칼로 알려진 ‘히젠토’. 칼집에 ‘늙은 여우’(명성황후)를 단칼에 찔렀다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히젠도’ 환수위 결성…일본에 없애거나 인도 요구키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1851~1895)를 절명시키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칼 ‘히젠도’(肥前刀·사진)를 가져오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은 25일 ‘히젠도 환수위원회’(공동위원장 최봉태 변호사 혜문 스님)를 만들고, 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보관돼 있는 히젠도를 한국으로 넘기거나 없애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혜문 스님은 “이 칼은 지난 100여년 사이 발생했던 한-일간의 비극적인 업보를 상징하는 물건”이라며 “한 나라의 국모를 죽이는 범행에 사용된 증거품인 만큼 한국 검찰이 보관하면서 후세에 전하는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히젠도는 길이가 120㎝(칼날 길이 90㎝)에 이르는 칼로, 나무로 만든 칼집에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칼을 사용한 사람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머물던 경복궁내 건청궁 곤녕합에 잠입했던 3명의 사무라이 가운데 한 사람인 도 가쓰아키다. 그가 1908년 칼을 신사에 맡길 때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에는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고 적혀 있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도 등 47명은 사건 직후인 1896년 1월 명성황후 살인죄로 기소돼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다. 도 가쓰아키는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에 사용했던 칼을 신사에 맡기고, 명성황후의 한을 달래는 ‘관음상’을 만들어 넋을 기렸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연은 1995년 9월 <아사히신문>에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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