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희(84)씨
‘망명객’ 남태희씨, 세계태권연맹 원로사범 감사패
1954년 육군 1군단 사령부. 당시 스물여덟 살이던 남태희 대위는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맨주먹으로 기왓장 13장을 격파하는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저 무술은 태껸 아니던가.” 이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가 태권도란 명칭이 유래한 시발점이 됐다. 육군 29사단에 차려졌던 태권도장의 원형인 ‘오도관’ 공동 창설자 남태희(84·사진)씨. 그는 최근 세계태권도연맹(WTF)의 ‘해외 원로 태권사범 감사패 전달식’에 참석하고자 22일 고국을 찾았다. 그가 ‘태권도와 관련된 일’로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북·반한 활동을 편 ‘최홍희의 교관’으로 불렸던 그였기에 그동안 한국 정부는 물론 국내 태권도 단체에 가까이 하기 힘든 인사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정원 WTF 총재를 만난 남씨는 “내가 태권도란 말을 만들었는데 고국의 태권도 단체가 한 번도 날 불러준 적이 없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또 “국제태권도연맹이나 세계태권도연맹이나 따질 것 없이 우리 태권도는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최홍희(2002년 북한에서 별세) 장군 밑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의 기틀을 잡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낸 최씨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태권도를 전파하던 그는 70년대 초 전역 이후 고국을 등졌다. 박정희 정부와 불편했던 ITF 창설자 최씨가 72년 캐나다로 망명하자 남씨는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에 도장을 열어 30여년 태권도를 보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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