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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나는 모른다 - 시대의 죽음들을 애도하며

등록 2010-04-02 15:44

나는 한 준위의 사인(死因)을 모른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생물학적 원인에, 미안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 민간에 늘린 것이 감압 챔버인데 그가 왜 남의 나라 구조함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의 빈소에 바쳐지는 보국훈장 광복장이며 관 위에 덮이는 태극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이름 앞에 바쳐지는 솔선수범이니 살신성인이니 하는 수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늙은 군인이 희생해야 하는지, 죽어서야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되어야 하는지, 왜 죽은 그에게 세상은 사명감으로 칭송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그가 죽어서 국회의원과 장성들의 찍어대는 사진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박지연의 사인(死因)을 모른다. 그리고 스물셋의 노동자가 왜 “개인 질병” 백혈병으로 죽어가야 하는지 그것도 알지 못한다. 그 공장의 회장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 무슨 이유로 사면되고 복권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눈뜨고 본다, 세상의 늙은 것들이며 낡은 것들이 자기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난장판을. 그 돈 많고 권력 많은 머슴들은 왜 솔선수범하지 않는지, 왜 살신성인하지 않는지, 왜 살아서 비리를 휘덮고 부귀영화를 누리는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어찌해서 낮은 자들은 죽어서야 거룩해지는지, 죽어서도 억울해야 하는지, 이유 없는 죽음에 드리워지는 아 , 저 상찬과 변명의 사슬소리를 듣는다.

모르는 나에게 누가 답을 주겠는가. 지금은 곤란하므로 기다려야 하는가.

송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 후로 그는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만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토끼는 다시 얻지 못하고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지금 선왕(先王)의 정치로 오늘의 백성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그루터기를 지키고 있는 부류와 같다.


- 한비자, 「오두(五蠹)」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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