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그래도 ‘소송보다 조정’
서울법원조정센터 1년…2200건 처리 ‘성공률 50%’
# 보증금 3000만원을 내고 지하방에 세들어 살던 ㄱ씨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이웃집에서 “고양이 냄새와 울음소리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불평을 해와 집주인 ㄴ씨가 살펴보니 고양이가 무려 17마리나 됐다.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ㄱ씨는 “이사를 갈 테니 보증금을 빼달라”고 했고, ㄴ씨는 고양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환풍기 등을 설치하느라 들인 공사비 450만원을 공제하고서 주겠다고 했다. 이에 ㄱ씨가 다시 “고양이가 8마리뿐”이라며 50만원만 공제하라고 반발하면서 결국 둘은 서울법원조정센터(조정센터·위원장 박준서 전 대법관)로 갔다. 조정센터는, ㄱ씨에겐 “공사비 공제는 합리적”이라고, ㄴ씨에겐 “집이 오래된 것도 있다”고 설득해 보증금에서 185만원을 공제하는 선에서 조정을 성립시켰다. # 화물차량을 운전하는 ㄷ씨는 조경업자 ㄹ씨의 정원 옆을 지나다 짐칸으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100년이 된 이 소나무는 ‘봉황’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희귀한 것이었다. ㄹ씨는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7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나무를 3200만원에 팔게 됐다”며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ㄷ씨의 자동차 보험회사가 “3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맞서 둘은 조정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조정센터는 ㄷ씨에게 ㄹ씨에 대한 사과를 권고했고 결국 680만원에 조정이 성립됐다. 소송 대신 조정센터를 통해 민사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3일 출범 1돌을 맞는 서울법원조정센터의 경우, 첫 달 87건이던 접수 건수가 지난 3월 357건으로 늘어 지난 1년간 2200여건을 처리했다. 당사자들이 직접 신청하거나 소송 도중 법원이 조정센터의 조정에 회부하면 판사·변호사 등 법조 경력 15년 이상인 전문가로 구성된 상임조정위원들이 기일을 잡고 당사자들 사이에 합의를 유도하거나 조정안을 낸다. 당사자들이 조정안에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은 민사 소송으로 가지만, 이의가 없으면 강제집행될 수 있다. 지난 1년간 조정센터의 조정 성공률은 50.2%로, 일반 지방법원 합의부의 조정 성공률(21.7%)을 크게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임진강 참사’로 인한 유족과 한국수자원공사 간의 조정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황덕남 상임조정위원은 12일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소송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개인에게는 적은 비용에 간소한 절차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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