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창근 대우피해자대책위 위원장…“은닉재산 환수해야”
만감이 교차했다. 5년 동안 쌓인 분노와 고생이 눈앞으로 흘러 지나갔다. ‘잘못했다’고 하는 걸 볼 땐 어쩔 수 없이 측은한 연민의 정도 설핏 들었다. 그 순간 눈을 감고 거칠게 도리질을 쳤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4일 새벽, 5년8개월 남짓만에 해외도피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에서 누구보다 착잡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우그룹 계열사 주식을 샀다가 하루 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날려버린 소액주주들이다. 박창근 대우피해대책위원회(
cafe.daum.net/daewoojuju) 위원장도 대우전자 주식을 갖고 있다가 12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피해자들은 보상도 보상이지만, 김우중이 한쪽에서 영웅대접 받는 현실에 더 분노합니다.” 박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사면론과 관련해 “김종률 의원이 베트남까지 가서 김우중을 만나고 온 것은 그의 귀국이 여권과의 사전교감으로 이뤄졌다는 걸 보여준다”며 “이런 이상한 방법으로 상황을 돌파하려고 하면 두고 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우중이 입을 열면 피해를 보는 건 호남의 옛 여권 인사 몇사람일 텐데, 여당이 민주당에 호남을 빼앗길까봐 몇사람 표적수사 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지 않겠느냐”고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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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이 넘는 해외도피 생활을 마치고 14일 오전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인천 국제공항에서 검찰 직원들과 함께 출국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영종도/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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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은 대우주식 팔아 딴데 투자…소액주주 피해규모 3조원 넘어”
대우피해자대책위가 주장하는 피해 규모는 3조원이 넘는다. 대우그룹 상장사들은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들의 지분도 거의 없어 90% 이상의 절대지분을 소액주주들이 나눠갖고 있었고, 대우 사태가 터지면서 27만8800여명이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가운데 500여명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모인 게 대우피해자대책위로 이어졌다. 그동안 재판이 지리멸렬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김 전 회장의 귀국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다시 모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투자로 돈을 벌려고 투자했으면 그에 따른 피해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겠지만, 이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가 분노하는 건 분식회계로 소액주주들의 눈을 속여놓고 김우중 등은 대우 계열사 주식을 몽땅 팔아 교보나 이수화학 주식을 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액주주들만 철저히 당한 셈입니다. 그런데도 재판부의 판결 내용이 진짜 웃겼습니다. 제 경우 피고 8명에게 피해액의 30%만 지불하도록 해놓고 소송비용은 제게 70%를 대라고 한 겁니다. 22조9천억원을 분식회계해서 10조원을 사기대출 받고 23조원을 국외로 빼돌린 희대의 사기꾼에게는 곤장 3대를, 순진한 피해자에게는 곱배기도 넘는 7대를 때린 꼴입니다.”
“사면 위한 쇼 할거면 차라리 사법처리에 드는 혈세를 아껴라”
법원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는 박 위원장은 정치권 일부와 전 대우직원들 중심으로 김우중 사면론이 일고 있는 걸 보며 김 전 회장의 사법처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는 “‘구속수감 → 병보석 → 선고 → 집행유예 → 사면’ 수순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말 그대로 대국민 ‘쇼’일 뿐”이라며 “그런 식이라면 굳이 국민의 혈세를 다시 들여 사법처리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조사해보니 김우중이 처, 아들, 딸에게 ‘합법적’으로 증여한 재산이 엄청나고 은닉한 재산도 상당하다”며 “김우중이 귀국하면서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증여재산과 은닉재산을 확수해 피해자 보상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우피해자대책위가 조사한 바로는, 김우중 전 회장 관련 재산 가운데 시가로 계산이 가능한 재산만 △영국의 대우그룹 비밀금융조직인 BFC가 관리하고 있는 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자금(8620억원) △방배동 대지 1005㎡(30억원 상당) △이수화학 주식 22만5388주(24억원)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최소 200억원) 등이다. 이밖에도 가격 산정이 어려운 경주호텔, 하노이 대우호텔, 포천소재 아도니스 골프장, 프랑스 니스 호화별장 등이 가족 이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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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8개월의 해외도피생활을 마치고 1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입국에 앞서 시민단체들이 항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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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식으로 기업하면 큰 일 난다는 것 널리 알릴 터”
박 위원장은 “김우중이 못 내놓겠다면 경영진의 분식회계나 고의적 은폐로 손해를 본 소액주주들의 소송시효를 연장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을 청원하겠다”며 “김우중식으로 기업하면 큰 일 난다는 것을 널리 알려 우리 사회에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미신이 확산되지 않도록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또 은밀하게 김우중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옛 대우 출신들에게 “박정희 독재정치를 잊지 못해 박정희 향수병 걸린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며 “무엇보다 지금은 기업사냥과 분식회계와 정경유착의 김우중식 경영이 통하는 시대가 아닌만큼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밝힐 것은 밝히고, 배상할 것은 배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