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마산시와 창원시에서 온 허아무개씨(오른쪽)와 강아무개씨가 19일 오전 부엉이바위에 앉아 노 전 대통령의 집이 있는 봉하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사람은 고향 선후배 사이라고 했다.
추념 가득 눈망울들 “그의 친밀함·소신 그리워요”
23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은 19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주기 추도식 겸 묘역 완공식을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 묘역 옆 공터에서 연다고 밝혔다. 방송인 김제동씨 사회로 열리는 추도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해, 노 대통령이 직접 부른 ‘상록수’를 참석자들이 함께 따라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1주기를 앞둔 봉하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현 정부는 거리감 느껴져” “노무현 정신은 사람 중심”
지난 18일 오후 1시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봄비치곤 빗발이 세찼다.
봉화산 밑에서 시작되는 236개의 계단을 오르면, 산길은 봉화산 정토원 가는 길과 부엉이바위 쪽으로 나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형형색색 연등은 정토원 쪽으로 이어져 있고, 우산을 든 이들은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정표조차 없는 험한 길을 지나 부엉이바위에 오르니, 먹장구름이 봉하들판을 뒤덮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왈칵 먹물을 쏟아낼 듯했다. 단체 관광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을 둘러보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18일 낮부터 19일 오후까지, 기어이 바위까지 찾아온 이들을 기다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과 회한을 더듬었다.
■ 가슴앓이 소주병, 구겨진 담뱃갑과 종이컵, 라이터가 바위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살아생전 노 전 대통령의 ‘담배 한 개비’ 이야기 탓인지 여기저기 꽁초가 떨어져 있었다. 봉화산은 ‘완전 금연구역’이지만, 바위를 찾아온 이들은 종종 담배를 피웠다.
18일 황혼 녘, 전남 함평이 고향인 노아무개씨도 그랬다. 부인과 함께였다. “먹고살다 보니 이제야 왔네요. 착잡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강자한테 희생된 거라고 말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 그는 빗물이 그득 고인 논이 담아낸 산그림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전북 정읍에서 온 이예열(75)씨도 말을 아꼈다. “(노 전 대통령이) 돈 없이 어렵게 공부했다던데, 뜻대로 못 살고 고생만 하다 갔습니다.” 전에도 몇 차례 이곳에 왔다는 그는 바위 너머 뱀산이라 불리는 곳을 한참 쳐다보다 반쯤 망가진 우산을 쥐고 산을 내려갔다. 옆마을인 ‘장뱅이’가 고향이라는 안선규(50·경남 진주), 박철홍(50·경기 성남)씨가 바위를 찾아왔다. 봉화산은 어릴적 놀이터였다고 했다. 그들에게 어렵사리 ‘노무현’을 물었다. “정치요?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기 욕심은 없는 사람이었다 아입니까.” 박씨는 퇴임 후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뻔했는데, 결국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역시 ‘희생양’이란 표현을 썼다. 바위 앞에는 나무울타리가 새로 생겼고, ‘위험! 들어가지 마세요’란 팻말도 걸렸다. 꼭 1년 전에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 공감 대구에서 온 경북대생 이정기(25), 유경택(25)씨는 참여정부 때와 지금이 참 다르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이씨가 말했다. “거리감이죠. 노무현 하면 친밀하게 느껴졌거든요. 저, 그렇다고 노빠는 아닙니다.” 정당하게 노력해서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신’을 민주주의와 친밀로 간추렸다. 김형수(33)씨는 강원 원주에서 직장 동료 둘과 함께 휴가를 내고 봉하마을을 찾았다. “정치엔 무관심합니다. 다만 그가 남긴 가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소신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이) 힘들었지만 후손들 하는 일을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박옥순(80)씨는 딸 넷을 모두 데리고 왔다. “그이? 살아서 구박받고 죽어서 명(이름)난 거야. 내가 촛불을 한 다라이 켜줬는데….” 박씨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요즘 세상은 무섭고 팍팍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옥색 한복에 비옷을 껴입은 박씨는 딸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 그래도 남은, 분노 경남 마산과 창원에서 온 허아무개(49), 강아무개(46)씨는 바위에서 폭포수 같은 말을 기자에게 쏟아냈다. “노무현 정신은 사람 중심의 생각이에요. 5년은 너무 짧았어요.”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 사람들이 좀 약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때론 정치적인 행동도 필요한데….” 재임 시절엔 ‘괜찮은 대통령’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허씨는 서거 뒤 노 전 대통령의 사람됨을 더 잘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 이유도 말하지 못한 채 끝내 눈물을 보였다. 15년간 노동조합 일을 하다 10년 전 자영업으로 돌아선 김정국(53)씨는 조근조근 말했다. “진보는 더 무너져야 합니다. 서울시장, 경기지사 선거에서 이긴들, 분열하고 나약한 모습 또 보이면 2년 뒤 대선에서 반드시 집니다. 더 무너져야 합니다.” 비판은 매서웠다. “보수가 아니라 분열된 진보가 그를 죽인 겁니다.” 정치적 자산으로 노 전 대통령을 부려 쓸 게 아니라, 뜻을 모으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틀간 부엉이바위에서 만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소신·소탈·정직’ 등의 단어로 기억했다. 되도록 비판의 말은 아꼈다. 18일 한 시민은 국화 두 송이를 조심스레 나무울타리에 꽂아놓고 사라졌다. 종일 내린 비로 고개가 꺾인 꽃은 이튿날 내리쬐는 햇빛에 바싹 말라버렸다. 손을 대면 금세 꽃봉오리가 꺾일 듯했다. 김해/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18일 황혼 녘, 전남 함평이 고향인 노아무개씨도 그랬다. 부인과 함께였다. “먹고살다 보니 이제야 왔네요. 착잡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강자한테 희생된 거라고 말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 그는 빗물이 그득 고인 논이 담아낸 산그림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전북 정읍에서 온 이예열(75)씨도 말을 아꼈다. “(노 전 대통령이) 돈 없이 어렵게 공부했다던데, 뜻대로 못 살고 고생만 하다 갔습니다.” 전에도 몇 차례 이곳에 왔다는 그는 바위 너머 뱀산이라 불리는 곳을 한참 쳐다보다 반쯤 망가진 우산을 쥐고 산을 내려갔다. 옆마을인 ‘장뱅이’가 고향이라는 안선규(50·경남 진주), 박철홍(50·경기 성남)씨가 바위를 찾아왔다. 봉화산은 어릴적 놀이터였다고 했다. 그들에게 어렵사리 ‘노무현’을 물었다. “정치요?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기 욕심은 없는 사람이었다 아입니까.” 박씨는 퇴임 후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뻔했는데, 결국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역시 ‘희생양’이란 표현을 썼다. 바위 앞에는 나무울타리가 새로 생겼고, ‘위험! 들어가지 마세요’란 팻말도 걸렸다. 꼭 1년 전에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 공감 대구에서 온 경북대생 이정기(25), 유경택(25)씨는 참여정부 때와 지금이 참 다르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이씨가 말했다. “거리감이죠. 노무현 하면 친밀하게 느껴졌거든요. 저, 그렇다고 노빠는 아닙니다.” 정당하게 노력해서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신’을 민주주의와 친밀로 간추렸다. 김형수(33)씨는 강원 원주에서 직장 동료 둘과 함께 휴가를 내고 봉하마을을 찾았다. “정치엔 무관심합니다. 다만 그가 남긴 가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소신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이) 힘들었지만 후손들 하는 일을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박옥순(80)씨는 딸 넷을 모두 데리고 왔다. “그이? 살아서 구박받고 죽어서 명(이름)난 거야. 내가 촛불을 한 다라이 켜줬는데….” 박씨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요즘 세상은 무섭고 팍팍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옥색 한복에 비옷을 껴입은 박씨는 딸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 그래도 남은, 분노 경남 마산과 창원에서 온 허아무개(49), 강아무개(46)씨는 바위에서 폭포수 같은 말을 기자에게 쏟아냈다. “노무현 정신은 사람 중심의 생각이에요. 5년은 너무 짧았어요.”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 사람들이 좀 약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때론 정치적인 행동도 필요한데….” 재임 시절엔 ‘괜찮은 대통령’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허씨는 서거 뒤 노 전 대통령의 사람됨을 더 잘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 이유도 말하지 못한 채 끝내 눈물을 보였다. 15년간 노동조합 일을 하다 10년 전 자영업으로 돌아선 김정국(53)씨는 조근조근 말했다. “진보는 더 무너져야 합니다. 서울시장, 경기지사 선거에서 이긴들, 분열하고 나약한 모습 또 보이면 2년 뒤 대선에서 반드시 집니다. 더 무너져야 합니다.” 비판은 매서웠다. “보수가 아니라 분열된 진보가 그를 죽인 겁니다.” 정치적 자산으로 노 전 대통령을 부려 쓸 게 아니라, 뜻을 모으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틀간 부엉이바위에서 만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소신·소탈·정직’ 등의 단어로 기억했다. 되도록 비판의 말은 아꼈다. 18일 한 시민은 국화 두 송이를 조심스레 나무울타리에 꽂아놓고 사라졌다. 종일 내린 비로 고개가 꺾인 꽃은 이튿날 내리쬐는 햇빛에 바싹 말라버렸다. 손을 대면 금세 꽃봉오리가 꺾일 듯했다. 김해/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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