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장을 나흘 앞둔 14일 오전 막바지 주변 정리 작업이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일대의 서울숲공원 안 수변지구에 놓인 다리 위로 공사 관계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90여년 잊혀진 땅 딛고
사슴노는 서울 숲으로 재회 시원한 강바람에 모났던 마음도 둥그레졌다. 다리가 아니라 바람이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듯했다. 15일 오후 서울숲공원 개장을 사흘 앞둔 뚝섬을 둘러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마포대교를 출발했다. 사람들이 바글대는 여의도지구를 지나 30분쯤 달리니 반포대교 부근으로 접어들었다. 이곳 잠수교는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이 자전거를 타고 편안하게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다. 다리 중간께 유람선이 다니도록 불쑥 돋아놓은 부분을 올라가느라 종아리가 뻐근했지만 내리막길은 부드러운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상쾌했다. 북쪽 강변을 따라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간 끝에 도달한 동호대교 북단. 여기에 서면 뚝섬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랑천이 긴 숨을 내쉬며 한강과 몸을 섞는 곳에 섬이 생겼다.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시간이 만들어낸 땅. 옛사람들은 이곳의 풍광을 사랑해 여름 더위를 피하고 뱃놀이를 즐겼다. 자전거 초보자는 13.3㎞의 길을 1시간20분 만에 달렸다. 서울숲 들머리에 이르자 공원과 한강 둔치를 잇는 보행자 가교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뚝섬 앞 모래섬이었던 옛 저자도가 있던 곳에 만들어진 ‘생태숲’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놀도록 보행자 가교를 놓아 사람의 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사슴과 고라니와 다람쥐는 아래에서 뛰놀고, 사람은 위에서 걷는다. 이처럼 큰 숲을 2년6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생태적인 방식인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동물들을 돌보는 사육사 정해남씨는 “서울대공원의 동물원 우리에 갇혀 지내던 동물들이 서울숲으로 옮겨오자 사육사가 건네주는 먹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알아서 싱싱한 풀을 뜯어먹는다”고 전했다. 어찌 고라니뿐일까? 콘크리트 빌딩에 갇혀 살던 사람도 자연 속에선 절로 활개를 치지 않나? 뚝섬이 먼 길을 돌고 먼 세월을 지나 시민 품에 돌아왔다. 그동안 뚝섬은 ‘뚝’ 떨어져 있는 땅이었다. 1908년 경성수도양수공장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50년대엔 동부권 공업지대 육성 차원에서 성수동에 경공업 위주의 공장지대가 들어섰다. 무성했던 나무들도 베어졌다. 섬 한복판엔 서울경마장이 들어섰다. 이후 86년 과천에 경마장이 새로 생기면서 경마장은 문을 닫고 테니스장·골프장 등을 갖춘 체육공원으로 변신했다.
그동안 이 땅의 활용 방법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서울시청사·돔구장 건립, 문화관광타운 조성 등 여러 가지 계획들이 세워졌다 흩어졌다. 그렇게 20년이 흐르는 사이, 뚝섬은 사람들의 머릿속 지도에서 잊혀갔다. 2003년 서울시가 이곳에 35만평 규모의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뚝섬은 비로소 예전의 시민 놀이터로 되돌아왔다. 자전거를 타고 뚝섬을 찾아가는 짧은 여행은 돌아온 땅을 기억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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