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앞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관련 서한을 보낸 것과 관련해 연 규탄집회 도중 엘피가스통을 들여오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이적단체 박살내자” 건물앞 사흘째 격렬 시위
천안함외교 성과 못내자 책임 떠넘기기 분석도
천안함외교 성과 못내자 책임 떠넘기기 분석도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1층에 있는 기자실에 참여연대 간부가 들렀다. 그는 “기자들이 참여연대 소속으로 오해받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자리를 비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차 참여연대를 드나들던 일부 기자들은 사흘째 시위중이던 서울시재향군인회 회원 등에게서 이미 “×××를 따버리겠다”는 욕설을 들은 참이었다.
참여연대는 지난 15일 이후 줄곧 보수단체의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항의전화로 업무는 마비됐고, 사무실을 드나들기도 힘들다. 200여명의 경찰병력에 에워싸인 참여연대 건물 안에서는 “블라인드로 창문을 가리고 간사들의 출입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번갈아가며 집회를 열던 보수단체 회원들은 참여연대에서 나오는 여성 간사들을 향해 “얼굴도 못생긴 ×. 김정일이 품으로 꺼져버려라”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이날 오전 참여연대 앞에서 집회를 연 고엽제전우회 회원 200여명은 “이적단체 참여연대를 박살내자”고 외치며 건물에 물통과 달걀을 던졌다. 건물 진입까지 시도하던 이들은 경찰과 충돌하는가 하면, 시너가 가득 담긴 소주병 10여개를 싣고 엘피가스통까지 매단 승합차량이 참여연대 건물로 향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지난 16일 오후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무실을 나오던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리는 일도 벌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와 여당, 보수세력이 의도적으로 참여연대를 ‘마녀사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 6·2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은데다, ‘천안함 외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중국과 러시아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천안함 외교에 실패했을 경우 참여연대 등에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참여연대에 대한 보수단체의 공격에서 야만적인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불길한 조짐을 읽는 이들도 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벗어나려고 정부가 천안함 외교에 올인하면서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등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탈냉전으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검찰과 보수단체가 이에 일조하고 있는 것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과 진보세력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키워온 보수단체들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현 정부과 여당, 보수언론, 많은 뉴라이트 단체들이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우단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이슈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극우 테러리즘’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날 검찰이 참여연대 수사에 착수한 것과 관련해 성명을 내어 “한국 정부가 안보 우려를 갖고 있는 점을 이해하지만, 이런 우려가 개인이나 단체의 인권 행사와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제약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보수단체의 참여연대 앞 불법 집회에 대해 집시법 위반으로 엄중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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