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홍준 문화재청장. 김종수 기자.
“<이름없는 영웅> 불러서가 아니라 남쪽보수 반응 예상못한 잘못”
“매우 사려깊지 못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유홍준 파문’은 당사자의 사과만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날 남쪽으로 돌아와 해단식을 한 대표단을 향해 “진정한 해단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간첩 찬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직에서 물러날 때만 가능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처신은 남북간 화해와 협력 분위기에 치명적인 불신의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하지만 ‘유홍준 파문’에도 소득은 있다. ‘6·15 통일대축전’ 북쪽 주최 만찬장에서 남한정부 관계자가 북쪽 첩보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주제가를 불렀을 때 남한사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새삼 입증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무엇보다 유 청장이 일방적 난타를 당한 뒤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될 남북관계의 복잡한 현실이 이번 파문에는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전문가들 다수 “정부대표 공직자의 행동으론 부적절” 우선, 유 청장의 행동은 적절했는지, 적절치 않았다면 어느 대목이 적절치 않았는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작위로 접촉한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부적절했다’는 쪽으로 기운다. 일반적인 지적은 두 가지다. ‘남쪽 정부 대표단의 행동으로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과, ‘왜 하필 6·25 전쟁영웅을 찬양한 영화의 주제곡이냐’는 것이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남북관계 성격을 감안할 때 대표단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했다”며 “북쪽의 권유에 따른 돌출적인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권유를 거부했다고 크게 문제될 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공식적인 만찬장에서 공식 사절단으로 참석한 남쪽 공직자의 행동으로는 무리가 있다”며 “분위기를 띄우더라도, 남북대결 과정에서 북쪽을 옹호하는 노래보다는 ‘휘파람’등 남·북의 공통분모가 있는 노래가 좋지 않았겠나”고 비판했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신종대 교수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이우영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의 의견은 매우 실증적이다. 이 실장은 노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북한 영화나 노래 가운데 남쪽과 미국을 비난하지 않는 게 얼마나 되느냐”며 “남쪽에서 자주 불리는 ‘휘파람’도 사실은 김일성 주석을 가리키는 노래”라고 말했다. 또 “북쪽 인사가 남쪽에서 비슷한 성격의 남쪽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데, 남쪽 인사가 북쪽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다면 체제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없는 …> 주제가는 애틋한 사랑노래 실제로 이 노래는 영화 제목(<이름없는 영웅들>)과는 달리 남녀간 애틋한 사랑을 노래해, 선전·선동성 정치구호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3절로 된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미군 방첩대원인 여자 주인공이 외국 언론사 기자인 남자 주인공에 대해 감시를 늦추지 못하면서도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는 애틋함을 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청춘 남녀들이 이성에 대해 사랑을 첫 고백할 때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가사를 외우는 ‘인기가요’로 알려져 있다. 어렵게 북핵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북쪽의 요구를 물리쳐 남북 화해 분위기를 경색시킬만큼 이 노래가 심각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김일성 주석을 조문하지 않아 남북관계가 심각한 상태로 치달았던 전례를 들기도 한다. 한 북한관계 전문가는 “교류협력의 마당에서 북한노래 한 곡 부르는 게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노래를 부르고 나서 평양 현지에서 사과를 하는 바람에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재반론도 있다. 김일성 주석 조문과 이번 일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문은 전쟁 중에도 지키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지만 이번 경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적절한 비교대상이 아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유 청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남북관계 전문가들도 “부적절했다” 수준을 넘어서진 않는다. 왜 이들은 ‘북한 고위층의 기쁨조 역할’, ‘피땀 흘려 모은 세금으로 이런 기막힌 공직자의 월급까지 대줘야 하는지 탄식과 절망감에 빠진다’(한나라당 성명)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지 않는 걸까. 애초 평양발 기사 제목은 ‘유청장 만찬장서 북 노래…분위기 바꿔’ 이런 궁금증을 푸는 데는 애초 공동취재단이 북쪽에서 보내온 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동취재단의 기사 제목은 ‘유홍준 문화재청장, 만찬장서 북 노래…분위기 바꿔’였다. “북한 체류 1개월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인기영화 주제곡을 불러 북한 대표단의 공감을 불렀다”가 해당 기사의 시작이다. <조선일보>가 이튿날치 기사에서 이를 A4면에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전한 것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동아일보>가 1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고 쓰고 대대적으로 제목을 뽑고, <중앙일보>도 4면에 ‘북 전쟁영웅 찬양곡으로 밝혀져’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 재작성함으로써 큰 파문으로 이어졌다. 이들 신문의 보도가 나오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신랄한 비난 성명을 내놓았고, 이는 다시 17일치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비난 사설로 확대재생산됐다. ‘만찬장 분위기를 바꾼’ 노래가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면, 이를 ‘간첩찬가’로 몰고간 언론보도와 정치권의 반응도 적절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여전히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 참으로 당혹스럽고 암담하게 느껴진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 “유 청장 잘못만큼 정치권과 일부언론도 잘못” 유 청장의 행동에 대해 “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고 평가한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똑같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 청장의 실수는 당장 남남갈등을 빚도록 긁어부스럼을 만든 실수”라며 “앞으로 닥칠 더 험한 일도 많은데 일부 언론에서 색깔논쟁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국력소모”라고 지적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남북관계연구실장도 “돌출적인 개인의 성격과 돌발적인 상황 등이 섞여 회식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크게 확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유 청장이 잘못한 건 공직자로서 그런 노래를 불러서가 아니라, 그런 행위가 남쪽 정치상황에 미칠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대북문제에 시비를 걸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준 것은 공직자로서 큰 잘못이다.” 이우영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은 “남쪽 보수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들의 반북정서가 있는 게 현실이라면 이를 어떻게 조정할지 공직자는 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국민들께 북한 노래 한 곡쯤 부를 수 있는 문화적 성숙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성명이 실현된다면 공직자로서 유홍준 파문도 언젠가 역사적 재평가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매우 사려깊지 못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유홍준 파문’은 당사자의 사과만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날 남쪽으로 돌아와 해단식을 한 대표단을 향해 “진정한 해단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간첩 찬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직에서 물러날 때만 가능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처신은 남북간 화해와 협력 분위기에 치명적인 불신의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하지만 ‘유홍준 파문’에도 소득은 있다. ‘6·15 통일대축전’ 북쪽 주최 만찬장에서 남한정부 관계자가 북쪽 첩보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주제가를 불렀을 때 남한사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새삼 입증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무엇보다 유 청장이 일방적 난타를 당한 뒤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될 남북관계의 복잡한 현실이 이번 파문에는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전문가들 다수 “정부대표 공직자의 행동으론 부적절” 우선, 유 청장의 행동은 적절했는지, 적절치 않았다면 어느 대목이 적절치 않았는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작위로 접촉한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부적절했다’는 쪽으로 기운다. 일반적인 지적은 두 가지다. ‘남쪽 정부 대표단의 행동으로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과, ‘왜 하필 6·25 전쟁영웅을 찬양한 영화의 주제곡이냐’는 것이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남북관계 성격을 감안할 때 대표단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했다”며 “북쪽의 권유에 따른 돌출적인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권유를 거부했다고 크게 문제될 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공식적인 만찬장에서 공식 사절단으로 참석한 남쪽 공직자의 행동으로는 무리가 있다”며 “분위기를 띄우더라도, 남북대결 과정에서 북쪽을 옹호하는 노래보다는 ‘휘파람’등 남·북의 공통분모가 있는 노래가 좋지 않았겠나”고 비판했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신종대 교수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이우영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의 의견은 매우 실증적이다. 이 실장은 노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북한 영화나 노래 가운데 남쪽과 미국을 비난하지 않는 게 얼마나 되느냐”며 “남쪽에서 자주 불리는 ‘휘파람’도 사실은 김일성 주석을 가리키는 노래”라고 말했다. 또 “북쪽 인사가 남쪽에서 비슷한 성격의 남쪽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데, 남쪽 인사가 북쪽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다면 체제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없는 …> 주제가는 애틋한 사랑노래 실제로 이 노래는 영화 제목(<이름없는 영웅들>)과는 달리 남녀간 애틋한 사랑을 노래해, 선전·선동성 정치구호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3절로 된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미군 방첩대원인 여자 주인공이 외국 언론사 기자인 남자 주인공에 대해 감시를 늦추지 못하면서도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는 애틋함을 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청춘 남녀들이 이성에 대해 사랑을 첫 고백할 때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가사를 외우는 ‘인기가요’로 알려져 있다. 어렵게 북핵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북쪽의 요구를 물리쳐 남북 화해 분위기를 경색시킬만큼 이 노래가 심각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김일성 주석을 조문하지 않아 남북관계가 심각한 상태로 치달았던 전례를 들기도 한다. 한 북한관계 전문가는 “교류협력의 마당에서 북한노래 한 곡 부르는 게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노래를 부르고 나서 평양 현지에서 사과를 하는 바람에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재반론도 있다. 김일성 주석 조문과 이번 일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문은 전쟁 중에도 지키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지만 이번 경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적절한 비교대상이 아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유 청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남북관계 전문가들도 “부적절했다” 수준을 넘어서진 않는다. 왜 이들은 ‘북한 고위층의 기쁨조 역할’, ‘피땀 흘려 모은 세금으로 이런 기막힌 공직자의 월급까지 대줘야 하는지 탄식과 절망감에 빠진다’(한나라당 성명)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지 않는 걸까. 애초 평양발 기사 제목은 ‘유청장 만찬장서 북 노래…분위기 바꿔’ 이런 궁금증을 푸는 데는 애초 공동취재단이 북쪽에서 보내온 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동취재단의 기사 제목은 ‘유홍준 문화재청장, 만찬장서 북 노래…분위기 바꿔’였다. “북한 체류 1개월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인기영화 주제곡을 불러 북한 대표단의 공감을 불렀다”가 해당 기사의 시작이다. <조선일보>가 이튿날치 기사에서 이를 A4면에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전한 것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동아일보>가 1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고 쓰고 대대적으로 제목을 뽑고, <중앙일보>도 4면에 ‘북 전쟁영웅 찬양곡으로 밝혀져’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 재작성함으로써 큰 파문으로 이어졌다. 이들 신문의 보도가 나오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신랄한 비난 성명을 내놓았고, 이는 다시 17일치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비난 사설로 확대재생산됐다. ‘만찬장 분위기를 바꾼’ 노래가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면, 이를 ‘간첩찬가’로 몰고간 언론보도와 정치권의 반응도 적절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여전히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 참으로 당혹스럽고 암담하게 느껴진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 “유 청장 잘못만큼 정치권과 일부언론도 잘못” 유 청장의 행동에 대해 “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고 평가한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똑같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 청장의 실수는 당장 남남갈등을 빚도록 긁어부스럼을 만든 실수”라며 “앞으로 닥칠 더 험한 일도 많은데 일부 언론에서 색깔논쟁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국력소모”라고 지적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남북관계연구실장도 “돌출적인 개인의 성격과 돌발적인 상황 등이 섞여 회식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크게 확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유 청장이 잘못한 건 공직자로서 그런 노래를 불러서가 아니라, 그런 행위가 남쪽 정치상황에 미칠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대북문제에 시비를 걸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준 것은 공직자로서 큰 잘못이다.” 이우영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은 “남쪽 보수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들의 반북정서가 있는 게 현실이라면 이를 어떻게 조정할지 공직자는 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국민들께 북한 노래 한 곡쯤 부를 수 있는 문화적 성숙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성명이 실현된다면 공직자로서 유홍준 파문도 언젠가 역사적 재평가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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