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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88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김영남씨100억대 사업가 성공

등록 2005-06-19 18:08수정 2005-06-19 18:08

▷ (사진설명)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영남씨가 카자흐스탄에서 굴지의 기업체를 거느린 사업가로 변신했다. 사진은 김씨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왼쪽은 당시 결승전에서 김씨에 패해 은메달에 그친 카자흐스탄(그 때는 소련)의 파올렛 선수로 그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체육장관이 돼 김씨를 도와주고 있다. 연합

카자흐스탄서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영남(46)씨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런 김씨가 97년 카자흐스탄으로 터전을 옮겨 ‘천산개발’이라는 건설회사를 설립한 뒤 지금은 백억원대의 재산을 일궈냈다.

김씨의 ‘성공 드라마’가 극적인 것은 파올렛이라는 뜻밖의 조력자의 존재 때문이다. 파올렛은 서울올림픽 레슬링 결승전에서 김씨와 맞붙었다가 패한 상대다. 파올렛은 당시 김씨가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패자인 자신의 손을 번쩍 들어준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끈끈한 우정을 지켜왔다.

파올렛은 카자흐스탄이 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카자흐스탄 체육계의 거물로 성장했고 김씨를 카자흐스탄으로 불러들이려고 했다. 김씨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아 심권호의 금메달을 조련해냈지만, 장래에 대한 회의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김씨가 카자흐스탄 땅을 처음 밟은 것은 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이미 진출해 있던 한국 기업들조차 문을 닫고 철수하는 어려운 때였다. 김씨는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그때마다 파올렛이 힘이 되어 주었다. 파올렛은 그 뒤 카자흐스탄 체육장관에 오르는 등 실권자가 돼 김씨를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고 한다. 김씨의 회사는 카자흐스탄이 2000년대 들어 연간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면서 불어닥친 부동산 개발 열풍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김씨는 여전히 자신이 체육인임을 잊지 않고 있다. 김씨의 주선으로 3개월 전 윤태일 핸드볼 코치가 고려인이 아닌 한국 체육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여자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또 열흘 전에는 최종국 전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이 카자흐스탄 대표팀 지휘를 맡았고, 조만간 양궁 역시 한국인 지도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김씨는 “사업에서도 금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했다”며 “세상에 도전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알마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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