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사화변화반영 새 군대문화 필요”
이번 사건은 같은 부대 선임병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김아무개 일병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직 사건의 진상이 모두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김 일병의 피해의식 등을 분석해 봐야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군대 내 자살 문제 등을 연구해 온 조용범 박사(심리학)는 “신체적인 학대뿐만 아니라 언어폭력도 자살이나 타살 등 극단적인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군이나 사회가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신체적 폭력에 견줘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며 “언어폭력이 신체 학대보다도 더욱 사람을 괴롭히고 자존감을 말살시킬 수 있고, 복수심이 쌓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이렇게 쌓인 복수심이 타살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는 주위 사람들이 사람이 아닌 악마로 느껴지고, 살인행위는 악마적 행위에 대한 응징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언어폭력이 일차적인 사고 원인일 수는 있지만 그 배경에는 군의 다양한 역기능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고 조 박사는 지적한다. 조 박사는 “자본주의와 동떨어진 군대의 착취구조, 날로 벌어지는 군대와 사회의 문화 격차, 아무런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의무복무 등 때문에 쌓인 피해의식이 언어폭력, 비인간적 대우 등을 계기로 해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해자는 항상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 일병이 어떤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대문화의 후진성이 병사들의 군대 부적응과 이런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황상민 교수(연세대·심리학)는 “예전에는 모두들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요즘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왜 군 복무를 해야 하는지부터 질문한다”며 “군 복무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공감이 없는 상황에서 강요된 군 생활을 경험하면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국방대학교의 한 교수도 “군 간부들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며 “지나치게 집단생활을 강조하면서 병사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병사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직업군인들이 대부분 관사에서 생활하는 등 사회와 단절돼 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 변화에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병사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은 구타, 가혹행위, 얼차려 등을 하지 말라는 다양한 지시를 내렸지만, 옛 군대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문화적 규범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의 노력으로 과거의 폭력적인 통제방식은 많이 사라졌지만,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군 부적응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은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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