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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울고웃는 사람들

등록 2005-06-19 20:09

 시민들이 19일 오후 서울 숭례문(남대문)이 공원으로 새로 단장되면서 놓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시민들이 19일 오후 서울 숭례문(남대문)이 공원으로 새로 단장되면서 놓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상인 “파리만 날려”, 시민 “이리 편한걸”

“야~, 횡단보도 몇 개 더 그었는데,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왜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지하로 내려가야 했을까?”

“휴~. 횡단보도 때문에 지하상가 상인들이 모두 한숨만 쉬고 있어요. 상인들의 가슴이 하나같이 숯덩이처럼 타들어간다니까요.”

최근 서울을 비롯한 일부 도시에서 교통체제를 차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면서 도심 이곳저곳에 횡단보도가 새로 생기고 있다. 시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지만, 지하상가 상인들은 급격한 매출액 감소에 울상만 짓고 있다.

‘차→사람’ 교통정책 바뀌면서 도심곳곳 건널목

16일 오후, 서울 숭례문(남대문) 광장.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떨어졌던 숭례문은 남쪽 보도와 연결되고 잔디와 나무를 심은 공원으로 지난달 27일 새롭게 태어났다. 개장과 함께 이 곳엔 횡단보도만 5곳이 들어섰다.

김영숙(54·관악구 봉천동)씨는 “시어머니와 자주 남대문시장을 찾는데, 무릎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지하도를 오르내리는 데 몹시 힘들어 했다”며 “횡단보도가 여러 곳에 생겨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철호(35·성동구 사근동)씨는 “장애인들과 노인들에게 지하도가 너무 불편했다”며 “다른 곳에서도 사람이 자동차 때문에 지하도나 육교를 걸어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숭례문 밑 남산지하보도로 연결된 숭례문수입상가 지하 2층 매장은 ‘파리를 날릴’ 정도로 한산했다.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횡단보도 건설로 손님이 절반으로 줄고, 매출액도 3분의1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주방잡화를 파는 김아무개씨는 “지하 2층 점포는 280여개 곳으로 4인가족 기준으로 보면 점포에 달린 입만 2400여명이 된다”며 “횡단보도가 놓여 매출액이 급감하는 바람에 은행 빚도 갚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대문지하보도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곳에서 신발을 파는 한 상인은 “횡단보도가 들어서기 전까지 신발을 하루 160켤레까지 팔았는데, 횡단보도가 놓이고 난 뒤 하루 2~3켤레 파는 데 그칠 때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숭례문수입상가 관계자는 “지하도를 리모델링해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과 전시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식당가를 만들어 횡단보도 설치에 따르는 문제를 풀어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지하상가도 몸살을 앓고 있다. 영등포역 앞으로 중앙버스전용차로가 놓이면서 지하상가 출입구 근처에 횡단보도도 따라 놓이게 돼 상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상가 쪽은 횡단보도 위치를 지하상가 입구와 20~30m 떨어지게 놓아달라고 구청과 경찰서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보행권’과 ‘생존권’을 둘러싼 이런 문제는 냉전의 유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냈던 손정목 현 시립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쓴 <서울도시계획이야기>에서 지하상가가 민방위 대피시설 활용을 위해 대대적으로 지어졌다고 밝혔다.

1975년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이 잇따라 공산화하자, 당시 박정희 정부는 ‘서울시 포기, 서울시민 남하 피난 정책’을 버리고 ‘수도사수’라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하상가조성 10년계획’을 만들고, 남대문~광화문~을지로3가~종로3가 등 서울 도심을 지하로 연결하는 순환 지하상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즉 지하상가는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보 논리 때문에 생겼다는 지적이다.

현재 지하상가는 서울 25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68곳이 운영 중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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