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전방 총기사고 충격 당시 상황 재구성 창군 이래 동료를 겨냥한 가장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의 하나로 꼽힐 이번 사건은 비무장지대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김아무개(22) 일병의 범행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군 발표 내용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수류탄 투척 25명 잠자다 ‘아수라장’
옥상초소등 실탄떨어져 몰살면해
“언어폭력등 괴롭힘” 동기 아직 모호 계획된 범행=김 일병이 19일 새벽 2시30분께 함께 근무를 선 선임병 이아무개(23) 상병에게 다음 근무자들을 깨우겠다며 총기를 놔두고 두 탄창에 든 실탄 50발을 지닌 채 내무반에 들어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고 군은 밝혔다. 김 일병의 이탈로 함께 경계근무를 서던 다른 근무자는 혼자 근무를 섰다는 말이 된다. 이는 반드시 두 명이 근무하도록 하는 최전방 경계수칙에 위배된다. 군 관계자는 “보통 상황실 근무자가 후임 근무자를 깨우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내무반에 몰래 들어가 정아무개(23) 상병의 총을 꺼내와 화장실에서 실탄을 장전하고, 수류탄 케이스에 들어 있던 수류탄을 꺼내 1차 안전핀을 제거했다. 김 일병은 이어 왼손에 수류탄, 오른손에 총을 쥐고서 내무반 앞에서 수류탄을 안으로 던졌다. 수류탄은 침상에 떨어져 다수의 병사들이 다쳤다. 그러나 수류탄의 파편은 위로 날아 흩어지기 때문에 25명이 잠을 자던 내무반에서 상당수는 굉음에 혼비백산하기만 했다. 이 경계초소를 뒤흔든 한밤의 폭발 소리는 수백미터 남쪽에서 근무하던 남쪽 철책 병사들도 듣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후 김 일병은 복도를 지나면서 체력단련장에 있던 소대장 김종명(26) 중위를 쏘아 즉사하게 하고, 상황실 문을 열고서 얼굴만 밖으로 내밀던 이아무개(25·학군 42기) 중위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이 중위는 황급히 안으로 피신해 화를 면했다. 불행 가운데서도 이런 행운이 나중에 제2의 참사를 막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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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은 취사장을 지나면서 안에 있던 취사병 이건욱(21) 상병을 쏘았으며, 다시 복도를 돌아 상황실 쪽에 사격을 하려다 실탄이 떨어져 탄창을 갈아끼웠다. 김 일병은 아수라장이던 내무반으로 다시 접근해 주검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부축하던 병사들을 향해 연발로 발사했다. 비명과 뒤이은 공포가 내무반을 다시 덮쳤다.
김 일병은 4명의 병사가 2개의 경계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옥상으로 올라왔다. 선임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떨어져 더는 발사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고 피격을 당할 뻔한 이 병사는 적이 경계초소 안에 침투한 것으로 오판해 김 일병에게 “빨리 근무하던 경계진지로 되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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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경위=김 일병은 원래의 경계진지로 되돌아왔으나, 상황실에서 간신히 몸을 피한 이 중위는 얼핏 보기에 범인이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이에 따라 군복을 입은 병사들을 따로 위층에 집합시켰다. 이어 이 중위의 지시에 따라 군복을 입은 병사 5명은 관측장교의 방에 일시 구금됐다. 구금된 병사들은 김 일병이 처음 총기를 경계진지에 놔두고 갔으나 나중에 다른 총기를 가져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추궁한 끝에 김 일병의 자백을 받아냈다. 악몽과도 같았던 20~30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군의 오락가락 발표=이는 육군이 이날 오전 ‘언어폭력을 당했던 김 일병이 근무자를 깨우러 왔다가 잠을 자던 선임병의 얼굴을 보고서 수류탄을 던졌다’고 발표한 내용과 큰 차이가 난다. 오전의 육군 발표대로라면 우발적 범행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오후 발표 내용은 김 일병의 계획된 범행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육군은 “김 일병의 진술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선임병한테서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갈굼’(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방지역의 병영 안 폭력이 심각했을 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또 사고 전날 부대원들이 농구 경기를 하는 과정에서 김 일병이 박수도 치지 않고 응원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관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걸 기자 s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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