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 보수화 추진 의혹투성이
이사간담회 “한경연 의견 없다” 문제 제기도
세종재단 경영난 거론도 사실과 동떨어져
이사간담회 “한경연 의견 없다” 문제 제기도
세종재단 경영난 거론도 사실과 동떨어져
세종연구소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해산하고 사단법인 형태의 새로운 거대 보수 연구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추진 과정부터 문제점과 의혹투성이다.
먼저, 새 법인 설립을 당사자인 세종연구소와 한경연이 아닌 외교통상부와 전경련 쪽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현 말레이시아 대사)와 이승철 전경련 전무가 통합에 관한 양해각서(MOU) 초안을 작성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외교부는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와 세종재단의 등록 관청으로 감독 권한만 있을 뿐 운영이나 해산에 직접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지난달 14일 열린 세종재단 이사간담회 회의록을 보면, 한 이사는 “통합 상대방인 한경연의 의견은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새 법인 설립 추진과정의 뒤에 ‘제3의 손’이 작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애초 세종연구소가 한경연을 흡수통합하는 방안이 추진되다 두 연구기관 해산 뒤 새 법인 설립 쪽으로 방향을 튼 대목에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이 7월14일 이사간담회에서 ‘친북·좌경 연구소 개혁’을 공언하고, 새 법인의 설립 목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비전·전략인 ‘글로벌 코리아 구현’을 강조한 대목과 연결해 보면, 그 배경이 분명해진다. 세종연구소의 진보·개혁 성향 연구진을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세종연구소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가 2008년 1월 발표한 ‘세계 최고 싱크탱크(연구집단)’에서 한국의 민간 연구소로는 유일하게 ‘아시아의 선두권 연구집단’으로 뽑힌 통일·외교·안보분야의 대표적인 민간 공익연구소다.
공 이사장은 새 법인 추진의 배경으로 세종재단의 경영난을 거론했는데, 이 또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세종재단의 재산 상황을 보면 600억원 남짓한 현금(운영자금 214억원, 기본기금 395억원)이 있고, 외교부로부터 2009년 2월 매각 승인을 받은 1만2000평을 포함한 1만8300여평의 재단 터(시가 2114억원 상당)도 있다. 한해 10억원 남짓한 적자를 감당하고도 남을 재산이다. 지난달 이사간담회에서도 여러 이사들은 “세종을 전경련에 넘겼다는 오해와 비판의 우려가 있을 것”, “전경련이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다른 의견이 반영됐는지 모르나 (통합연구소 설립의) 방향이 바뀐 거 같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가뜩이나 우리 사회 정책 생산의 생태계가 빈약한데, 모범적 싱크탱크로 꼽히는 연구소를 통폐합하면 국가정책의 기반이 더욱 약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진보진영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자율적 입장에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국제적 성과도 거둬온 연구소를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연구소는 1983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퇴임 뒤 권력행사 거점 마련의 일환으로 설립된 일해재단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88년 5공청문회에서 문제제기된 이후 90년대 20만평의 부지 가운데 18만평을 국가에 기부하고 세종재단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쳐 중립적 독립 민간 공익연구소로 거듭났다.
이제훈 최원형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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