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19일과 20일 이틀 동안 모두 3차례에 걸쳐 최전방 경계초소 총기난사사건 조사결과를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부상자 가족들은 조사결과에 여전히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부상자 살릴 수 없었나?=육군의 20일 설명을 보면, 김아무개 일병의 난동이 끝난 19일 오전 2시44분께 후임 소초장 이아무개 중위가 초소 피해상황을 확인한 뒤 대대장에게 ‘병력 5~6명이 부상했다’고 보고했다. 육군은 현장검증 결과, 이 중위가 사망자 7명과 부상자 3명을 모두 부상자로 착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망한 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화(50)씨는 “부상병들의 말을 들어보니 (내무반 안에서 숨졌다는 5명 가운데) 1명은 즉사했고, 4명은 1시간 가량 지난 다음에 죽었다고 한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조씨는 “이태련 상병은 허벅지 대동맥이 파열돼 죽었는데, 후속조처가 제대로 됐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이 밝힌 시간대별 조처상황을 봐도, 후방 일반전초(GOP) 대대에서 구급차가 출발한 시각이 오전 3시40분이고, 초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4시25분이다. 구급차 출발에 1시간 이상이 걸렸다. 후송 뒤 숨진 이건욱 상병 역시 허벅지 대동맥 관통으로 인한 과다출혈이 사인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욕 먹었다고 살인하나?=육군 조사 결과는 김 일병의 범행 원인이 ‘인격모독성 언어폭력에 대한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범행 전날에도 신아무개 상병으로부터 ‘씨××끼’나 ‘×새끼’ 등과 같은 욕을 들었다고 한다. 2~3분 정도의 잔소리도 들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사고가 난 뒤 소대 동료 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설문에서도 폭행이나 물리적 가혹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김 일병이 부대원들을 살해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심한 좌절감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고문관’인 동시에 ‘왕따’ 신세에 놓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철수 조사단장(준장)은 “김 일병은 몸이 약했고, 다니던 대학에서도 스스로 학교생활에 어울리지 못하고 중퇴를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작은 말에도 마음을 다칠 수 있는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분석했다. 박 단장은 “소대원들도 왕따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살펴주는 데) 소홀한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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