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류봉기(뒤쪽)씨가 대전 동구 가양1동 자신의 집 마당에서 딸 춘숙(앞쪽)씨와 포도를 따고 있다.
폐암투병하며 봉사·기부 이어가는 류봉기씨
12년째 교복값·5년째 ‘음악’ 연주
“이웃 아픔 못 지나치는 참봉사인” “5년 뒤 폐암이 완치되면 딸과 함께 전국 오지를 다닐 거예요. 나는 아코디언 연주하고 딸은 어르신들 이발해 드리고….” 류봉기(62)씨는 가늘고 쉰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지난 5월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중인 그는 넉달 만에 몸무게 16㎏이 줄어 이제 49㎏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는 5년 전에 딸 춘숙(35)씨와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고 했다. 승합차를 마련해 딸과 함께 전국 산골을 다니며 노인들에게 음악과 미용 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날 한시에 류씨는 색소폰학원에, 춘숙씨는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지난 10일 대전 동구 가양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그는 “할 수 있다”는 말을 거듭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류씨는 40년 전 군에서 제대한 뒤 홀로 대전에 정착했다. 모진 고생 끝에 작은 건설업체를 꾸리게 된 그는 삶에 늘 감사하며 산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불모지에서 삶의 장미꽃을 피웠어요.” 그는 이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12년 전부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해마다 200만~300만원씩 교복값을 건네고, 5년째 노인요양병원에 다니며 케이크와 과일 등을 선물하고 멋진 색소폰 연주도 들려주고 있다. “우리 아이들한테 봉사를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는 이제 색소폰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폐암 발병으로 숨이 가빠져 더는 연주가 어렵다. 서너곡만 부르면 숨이 막힌다. 그래서 대신 아코디언을 들었다. “돈은 일시적인 거예요. 만남이 중요합니다. 서로 만남이 이뤄져야 관계가 평생 이어지는 거죠.” 그는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주 이웃 돕기 성금으로 500만원을 선뜻 기탁했다.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폐암 투병의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커졌다. “아내와 삼남매를 앉혀놓고 물어봤죠. 500만원을 내놓고 싶다고 했어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흔쾌히 찬성하더라고요. 감동받았죠.” 류씨는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가양1동 주민자치위원장도 맡고 있다. 하을호 가양1동장은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을 이웃들이 겪고 있을 때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분”이라며 “참사랑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참봉사인”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독한 항암제 때문에 물 한모금 넘기기도 어렵다. 이날도 집에서 주민센터까지 걸어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겠다고 했다. “암 선고 뒤 주변에서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걸어다니잖아요. 제2의 인생입니다. 딸과 한 약속을 지킬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대전/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이웃 아픔 못 지나치는 참봉사인” “5년 뒤 폐암이 완치되면 딸과 함께 전국 오지를 다닐 거예요. 나는 아코디언 연주하고 딸은 어르신들 이발해 드리고….” 류봉기(62)씨는 가늘고 쉰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지난 5월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중인 그는 넉달 만에 몸무게 16㎏이 줄어 이제 49㎏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는 5년 전에 딸 춘숙(35)씨와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고 했다. 승합차를 마련해 딸과 함께 전국 산골을 다니며 노인들에게 음악과 미용 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날 한시에 류씨는 색소폰학원에, 춘숙씨는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지난 10일 대전 동구 가양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그는 “할 수 있다”는 말을 거듭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류씨는 40년 전 군에서 제대한 뒤 홀로 대전에 정착했다. 모진 고생 끝에 작은 건설업체를 꾸리게 된 그는 삶에 늘 감사하며 산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불모지에서 삶의 장미꽃을 피웠어요.” 그는 이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12년 전부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해마다 200만~300만원씩 교복값을 건네고, 5년째 노인요양병원에 다니며 케이크와 과일 등을 선물하고 멋진 색소폰 연주도 들려주고 있다. “우리 아이들한테 봉사를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는 이제 색소폰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폐암 발병으로 숨이 가빠져 더는 연주가 어렵다. 서너곡만 부르면 숨이 막힌다. 그래서 대신 아코디언을 들었다. “돈은 일시적인 거예요. 만남이 중요합니다. 서로 만남이 이뤄져야 관계가 평생 이어지는 거죠.” 그는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주 이웃 돕기 성금으로 500만원을 선뜻 기탁했다.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폐암 투병의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커졌다. “아내와 삼남매를 앉혀놓고 물어봤죠. 500만원을 내놓고 싶다고 했어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흔쾌히 찬성하더라고요. 감동받았죠.” 류씨는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가양1동 주민자치위원장도 맡고 있다. 하을호 가양1동장은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을 이웃들이 겪고 있을 때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분”이라며 “참사랑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참봉사인”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독한 항암제 때문에 물 한모금 넘기기도 어렵다. 이날도 집에서 주민센터까지 걸어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겠다고 했다. “암 선고 뒤 주변에서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걸어다니잖아요. 제2의 인생입니다. 딸과 한 약속을 지킬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대전/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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