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권력 암투로 꼽히는 ‘윤필용 사건’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73년 4월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군사재판을 받았던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가족이 지난달 말 고등군사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고 12일 군당국이 밝혔다. 지난 7월 숨진 윤씨를 대신해 아들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요청했다.
육사 8기 출신인 윤필용은 5·16 쿠데타 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61년)과 수도경비사령관(70년)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던 군부 실력자였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등 대구·경북 지역 후배들을 후원해,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대부 구실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권력실세들과 식사를 하던 중 “박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시게 하고 후계자는 이후락 형님이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문제돼, 윤필용은 그를 따르던 장교들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는 업무상 횡령 등 8개 죄목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년 뒤 풀려났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병력동원 계획 등 쿠데타 모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고, 권력 핵심 내부 다툼이거나 군내 경상도 출신과 이북 출신들의 파워게임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군 관계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박종규 경호실장-윤필용-강창성 보안사령관을 측근으로 두고, 충성경쟁을 시키고 권력 집중을 견제했다”며 “이후락과 윤필용이 가까워지면서 권력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걱정한 박 전 대통령이 윤필용을 버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필용을 제거했지만, 하나회를 계속 친위세력으로 활용했다. 1980년 하나회의 핵심구성원인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정권을 차지한 이후 윤용필은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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