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세중나모여행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컴퓨터 본체와 하드디스크, 회계관련 서류 등 압수물품을 상자에 담아 나오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뒤늦은 ‘세중’ 압수수색 왜
28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ㅇ공업 사건과 관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 단서가 새로 드러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결국 이번 압수수색은 천 회장이 ㅇ공업 이수우 회장에게서 각종 로비의 대가로 40억여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이미 알려진 혐의와 관련돼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단계에 증거 확보를 위해 실시되는 통상의 사례와 달리, 이미 금품수수 사실과 대가성 등을 대부분 확인하고 천 회장에게 소환 통보까지 한 뒤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격적’이라기보다는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까닭에, 검찰 안팎에선 이번 압수수색을 천 회장에 대한 ‘고강도 압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앞서 검찰은 천 회장의 혐의를 확인한 뒤 두달째 국외에 머물고 있는 천 회장에게 대리인을 통해 귀국하라고 종용했고, 천 회장은 애초 국정감사가 끝나면 돌아가겠다는 뜻을 검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천 회장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귀국을 계속해서 미루자 검찰은 그를 데려올 ‘뾰족수’가 없는 상황에서 압수수색 카드를 빼든 것으로 보인다.
천 회장이 스스로 귀국하지 않을 경우, 검찰은 그의 신병을 강제로 확보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천 회장에 대해 범죄인 인도 요청이라도 하라”고 질타했지만, 실제로 범죄인 인도가 이뤄질지는 검찰도 자신하지 못한다.
현행 범죄인 인도 조약은 양국에서 공통으로 처벌이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는 ‘쌍방 가벌성’이 기본 원칙인데, 천 회장의 혐의와 같은 로비는 미국에서 대부분 합법적인 활동으로 간주된다. 알선수재 혐의로 천 회장을 넘겨달라고 미국에 요구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현재 천 회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알선수재죄는 형법에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은 천 회장에게 ‘빨리 들어오라’는 재촉성 경고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외국에 머물고 있는 천 회장을 압박하고, 또 기존 혐의의 입증을 위한 보강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 회장이 언제 들어올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은 알선수재 액수나 출국 전력 등을 고려할 때 천 회장의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천 회장은 ‘박연차 로비’ 수사를 통해 증여세 포탈과 시세조종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8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만약 대법원에서 이 형량이 확정되고, 이와 별개로 알선수재 혐의까지 유죄 선고를 받게 되면 집행이 유예된 형량까지 합해서 이른바 ‘곱징역’을 살아야 한다. 검찰과 천 회장이 ‘막바지 힘겨루기’에 돌입한 형국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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