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교통사고 증거조작…숨진 아들에 덤터기
“당시 잘못했던 경찰은 지금도 진급해서 잘 살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9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인 부모가 누명을 쓴 채 죽은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고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밝혀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아냈다. 그러나 경찰·검찰 및 법원을 상대로 벌인 9년 동안의 진실찾기 투쟁은 ‘고난투성이’ 그 자체였다.
운전자를 바꿔치기해
전북 남원에 사는 손아무개(54)씨 부부가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 것은 1996년 5월. 손씨는 군 입대를 사흘 앞둔 아들이 친구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차를 몰고가다 화물차와 충돌해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친구 2명은 목숨을 건졌으나 아들만 숨졌다. 더구나 사고 직후 아들 친구 ㄱ씨를 운전자로 지목했던 경찰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아들을 운전자로 처리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손씨는 ㄱ씨의 아버지가 당시 해당 경찰서 교통계장과 절친한 사이라는 점을 의심했다.
손씨는 ‘운전자가 차 밖으로 튕겨나갈 리 없다’는 상식적인 의심을 갖고 법적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이 작성해 놓은 서류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사고 차량 운전석 밑에서 아들의 신발이 발견됐다고 수사보고서를 내놨고, 함께 탔던 또다른 친구 ㄴ씨도 무슨 일인지 “아들 손씨가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동승자 5년만에 고백
손씨는 수사한 경찰들을 증거조작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혐의없음’ 처분했다. 항고, 재항고를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친구 ㄱ씨를 상대로 낸 고소도 무혐의 처리됐고, 헌법소원까지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에 탄원서도 내봤고, 상급 경찰청에 재조사 요청도 해보고, 답답한 마음에 방송사도 찾아다녔다. 그사이 손씨는 직업인 인테리어업 일을 제대로 못했고, 살던 집마저 내놔야 했다. 중간에 병을 얻어 5년 동안 병원 치료도 받았다.
대법 “국가배상” 판결
그러던 중 문제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풀렸다. 트럭 운전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재판부가 운전자를 아들이 아닌 ㄱ씨로 지목해준 것이다. 이를 근거로 손씨는 다시 친구 ㄴ씨를 설득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ㄴ씨는 5년의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두고 검찰에서 사실대로 ㄱ씨가 실제 운전자였다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검찰의 재조사 때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이 차 바깥에 떨어진 아들 손씨의 신발을 운전석에 갖다 놓고, 손씨의 신발이 운전석 아래에서 발견됐다고 검찰에 보고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진급해서 잘…”
분노에 떨던 손씨는 경찰의 잘못을 국가에서 배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3일 “잘못된 수사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손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 뒤 손씨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협박까지 받아가며 죽을 결심으로 돌아다녔다”며 “모든 게 바로잡혀 뿌듯할 줄 알았는데, 막상 죽은 아들이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허탈함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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