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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소수자는 학교도 못다니나요”

등록 2010-11-16 08:37

가톨릭계 대학, 필리핀 유학생 기숙사 퇴출·자퇴종용
긴 속눈썹 위로 연보랏빛 아이섀도가 은은하게 빛났다. 작은 보석 귀고리를 하고 단발머리는 깔끔하게 뒤로 묶었다. ‘수수한 여성’ 느낌이 나는 필리핀인 ㅍ(24)은 게이(동성애자)다. 그는 지난 9월부터 서울의 한 가톨릭계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게이라는 이유로 지난달 말 학교 남자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기숙사 안에서 그와 관련해 ‘여성 속옷을 입는다’, ‘여자화장실을 사용한다’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았고, 결국 이런 내용이 학교 본부에 신고됐다. 학교 직원이 찾아와 기숙사를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교 쪽은 “당신의 행동이 풍기문란으로 기숙사 규칙에 어긋나고, 한국 문화와도 맞지 않는다”며 그를 내몰았다. 결국 ㅍ은 짐을 쌌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면 떠나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그는 학교 쪽이 내민 자퇴서에는 사인을 할 수 없었다. 게이라는 이유로 학업마저 그만두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ㅍ은 “나는 필리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교양인이며 학업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ㅍ은 필리핀에서도 가톨릭계 대학을 다녔다. 그곳에선 그가 성소수자인 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너는 아름다운 게이”라며 아들의 성정체성을 인정했다. 지난 5월 대학원 입학 면접을 볼 때도 지금과 다름없는 외모로 응시했지만 어떤 지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ㅍ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다. 입학 3개월 만에 학교에서 쫓겨날 신세가 됐다. 등록금 전액을 받던 장학금도 끊길 예정이다. 영어 기숙사 정책을 펴는 학교 쪽은 그가 기숙사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대가로 전액 장학금을 주기로 약속했었다. 학교는 “장학금은 기숙사 거주가 조건이었기 때문에 기숙사를 나간 이상 장학금을 줄 명목이 없다”고 설명했다. 장학금이 없으면 학업을 멈춰야 한다.

ㅍ은 강요된 자퇴만은 막으려고 지난달 말 주한 필리핀대사관을 찾아갔지만, “학교에서 이미 당신이 퇴학됐다고 하더라”는 대답만 들었다. 학교 쪽은 “기숙사 거주 학생들의 불만이 접수돼 ㅍ을 퇴실 조처한 것이고, 퇴학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ㅍ은 “성정체성 때문에 그토록 꿈꿔왔던 한국 유학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며 “그동안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억압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학이 게이라는 이유로 나를 몰아낸다면 기꺼이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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