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동일방직 사건 등 인권침해 조사 공개
경찰·안기부 등 개입…“평생 낙인 속 재취업 못해”
경찰·안기부 등 개입…“평생 낙인 속 재취업 못해”
한국현대사에서 동일방직 노동조합은 1972년 국내 첫 여성 노조지부장을 당선시키며 어용노조에 저항하는 등 70년대 노동운동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조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처참했다. 노동운동 탄압의 역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른바 ‘알몸시위 진압’(1976년)과 ‘똥물 테러’(1979년) 사건 등을 겪으며 노조원 124명이 대량 해고됐고, 이후 이들은 어느 곳에도 다시 취직하지 못하고 평생을 낙인 속에서 살아야 했다.
사정은 다른 회사 해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다시 취직을 하려 해도 면접관이 뭔가를 확인한 뒤 우리를 떨어뜨린다”며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리스트의 실체는 1987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업중이던 인천 경동산업 노동자들이 본사 노무담당 직원 책상에서 70~80년대 노조 활동가 1662명의 명단이 담긴 뭉치를 발견했다. 이 문건을 포함해 비슷한 리스트가 이후 국회 청문회 등에서 논란이 됐다. 그러나 당시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는지 밝혀내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혔다.
20여년이 지난 2010년, 비로소 국가기관이 ‘블랙리스트’의 구체적 실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힌 사실이 22일 뒤늦게 확인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지난 6월30일 내놓은 ‘청계피복노조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결정문’이 그것이다.
결정문을 보면, 진실화해위는 1년여 동안 경찰과 노동부 공무원, 중앙정보부 직원 등 73명을 조사했고, 이를 통해 “70~80년대 블랙리스트의 광범위한 작성과 취합, 배포에 경찰, 노동부,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 등이 개입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노조, 원풍모방노조 등 70~80년대 10대 노조 탄압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당시 리스트 작성 과정에 개입했던 이들의 상세한 증언도 있었다. 중앙정보부 노조 담당 정보관은 “동일방직 사태 이후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정부 차원에서 도시산업선교회 계열 근로자 명단을 작성하는 등 각별하게 처리했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 황아무개 과장은 “지역을 담당하는 정보관들이 지역 근로감독관이나 정보과 형사한테 명단을 받아 작성한 것”이라며 “기관끼리 명단을 공유해 이들의 공장취업을 원천적으로 막았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11개 노조 탄압사건의 피해 노동자 129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다고 발표할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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