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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끔찍했던 기억에 몸서리…“이젠 거기서 어찌 사나”

등록 2010-11-25 08:38

피난길에 오른 연평도 주민들이 24일 오후 해양경찰청 배편으로 인천 해경 부두에 도착해 마중 나온 가족과 얼싸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인천/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피난길에 오른 연평도 주민들이 24일 오후 해양경찰청 배편으로 인천 해경 부두에 도착해 마중 나온 가족과 얼싸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인천/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폭격뒤 이틀동안 거주민 1500여명 빠져나와
해군경 함정으로 이동…일부 부상자 병원으로
24일 오후 2시 해양경찰청 경비함정을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연평도 주민 우경순(53)씨는 하얀 고무장화를 신은 채였다. 전날 오후 우씨는 연천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장화를 신고 설거지를 하던 중 포격 소리를 들었다. 집에 들르지도 못한 채 대피소로 달려가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피난 행렬’에 동참했다. 우씨는 “작은집 형님이 폭탄 파편에 맞았다고 들었다”며 몸을 떨었다.

“살아서 나왔구나!” 강영옥(70)씨는 남편 최병후(73)씨를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씨는 23일 홀로 아들 집에 들렀다가 연평도로 돌아가는 길에 포격을 만났다. 인천항으로 되돌아와 연평도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남편 최씨는 “집 근처로 폭탄이 마구 떨어져 30분 넘게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며 “군이 민가를 향해 쏠 리 없으니 전쟁이 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평도에 포격이 지나간 뒤 23~24일 이틀 동안 주민 1756명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하고 201명만이 남았다. 연평도 주민이 파도처럼 밀려온 인천 연안부두에는 밤잠을 못 이룬 가족들과 취재진 수백명이 뒤엉켰다. 포격 당일 주민들이 어선을 타고 삼삼오오 섬을 빠져나온 것과 달리 24일에는 해군경 함정을 통한 이동만 허용됐다. 오전 8시30분에 연평도를 떠난 300t·500t급 해경 경비함정은 주민 346명을 태우고 오후 1시17분과 2시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오후 3시에는 주민 167명을 태운 해군 공기부양정이, 저녁 7시께는 17명을 태운 해경 경비함정이 추가로 도착했다. 주민 대부분이 짐도 없이 단출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승선은 연평 초·중·고등학교 학생 120여명 등 미성년자와 노약자를 우선으로 했다. 우희진(12), 희영(10), 승남(7), 희찬(6) 4남매를 데리고 인천항에 내린 현순정(39)씨는 “포격 소리에 놀라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모아 데리고 나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희진양은 “소방대원인 아빠가 복구 작업 때문에 같이 나오지 못했다”며 “춥고 무섭고 아빠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굴을 캐다 포격을 맞은 김용여(81)씨는 굴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들고 배에서 내렸다.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진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병대 관사 신축공사 현장에 24일 오후 차량과 컨테이너가 불에 타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있다.  연평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진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병대 관사 신축공사 현장에 24일 오후 차량과 컨테이너가 불에 타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있다. 연평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뭍에 닿은 주민들은 비로소 끔찍했던 지난밤을 떠올렸다. 김성순(71)씨는 “대피소에 전기도 안 들어와 춥고 컴컴한 곳에서 촛불을 켜고 100여명이 떨었다”며 “이젠 거기 못 돌아간다. 거기서 어떻게 사느냐”며 눈물을 떨궜다. 김지춘(41)씨는 “연평도 안 19개 대피소의 물품 지급 현황이 다 다르더라”며 “박스만 깔고 잔 곳도 있고 음식을 못 먹은 곳도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 중 폭발 소리에 고막이 터진 박명훈(46)씨, 대피 도중 어깨가 탈골된 전승환(42)씨 등은 구급차에 실려 가천의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창열 가천의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폭탄 파편을 맞거나 고막 파열 등의 부상을 입은 환자 10여명을 이송했다”고 밝혔다. 해경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연평도에서 인천항으로 오는 배를 추가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천시청과 해양경찰청 등이 임시 숙소로 안내한 인천 ‘인스파월드’ 찜질방에는 주민 150여명이 몰렸다. 이 숙소는 찜질방 쪽이 무료로 임시 제공한 공간인데도 정부는 ‘공식 숙소’인 양 주민들에게 알렸다. 화가 난 주민 60여명은 옹진군청을 항의방문해 제대로 된 의식주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시 옹진군청은 “워낙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숙소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곧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임지선 황춘화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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