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풍백화점 건설과정에서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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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는 29일로 10년이 된다. 1995년 6월29일 오후 퇴근길 시민들은 귀를 의심했다. 서울 강남의 최고급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려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삼풍백화점 붕괴는 고도성장과 개발지상주의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것은 시민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오로지 이익추구에만 몰두해 부실시공, 부실관리, 인허가 비리를 일삼은 총체적인 부패공화국의 모습이었다. 온 국민을 수치심과 절망에 빠뜨렸던 이 참사를 계기로 지난 10년 동안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많은 제도의 정비와 법령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현장의 관행,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은 여전히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의 원인과 대책, 현재의 안전 실태 등을 짚어보고 삼풍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2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완공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지하 4층, 지상 5층 건물(연면적 2만2368평)이 한번에 무너져 내리기까지는, 한 방울의 물이 수없이 떨어져 바위를 뚫는 것처럼 수두룩한 건설과정의 허점이 쌓여야 했다. 검찰수사 백서(1995년 11월)와 서울시 백서(1996년 9월)를 종합하면,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린 ‘한 방울의 치명타’는 건축기획부터 설계·감리·시공·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걸쳐 있었다. (그래픽 참조)
설계·안전관리 등 제도 강화됐지만
감리·구조기술사 활용 부실 여전
공무원 감독도 요식행위
그렇다면 삼풍이 보여준, 건설환경의 문제점은 현장에서 얼마나 개선됐을까? 전문가들은 법적·제도적 개선은 상당 수준 이뤄졌지만 ‘현장’에서의 변화는 미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도, 얼마나 개선됐나?=2000년 개정된 건설산업기본법은 기본구상에서부터 타당성조사·설계·지반조사·시공·준공보고서 작성·사후평가 등에 이르기까지 건설공사의 각 과정에서 발주청이 책임지고 규정을 따를 것을 명시했다. 또한 21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물은 해당 도지사에게 건축허가 사전승인을 받도록 했다. 백화점·극장 같은 다중이용 건축물 안전을 위해선 건축물 구조계산을 구조기술사 등이 하도록 했으며, 설계도면에는 반드시 구조기술사와 설계자가 공동으로 서명날인을 해야 한다. 건물을 지은 뒤 안전관리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 이전에는 16층 이상, 연면적 3만㎡ 이상의 건물에 대해 안전진단을 받도록 했으나 삼풍사건을 계기로 5000㎡ 이상의 다중이용 시설물은 1년에 2차례의 정기점검, 3년에 1차례의 정밀점검을 받도록 했다. 이런 안전진단은 관리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령 1000가구가 살고 있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 ㄷ아파트의 경우 아파트관리소장이 1년에 2차례씩 정기점검을 하고 있으며 3년에 1차례씩 100여만원을 들여 구조진단업체로부터 정밀점검을 받는다. 박홍신 시설안전기술공단 안전진단 제2본부장은 “삼풍 이후엔 아무리 요식적인 행위라도 구조적인 위험징후들을 그대로 보고 넘길 전문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각 건물에서 실시한 안전진단 실태조사 보고서가 ‘시설물정보 통합관리시스템’(Facility Maintenance System)으로 전산화돼 있다. 이밖에 건설교통부는 건설통합정보시스템(CALS)을 개발해 건축계획 구상부터 사후 유지관리까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한눈에 알아볼수 있도록 하는 전산망을 갖췄다. 현재 이 시스템은 전국 6곳의 지방국토관리청과 16곳의 국도유지건설사업소에서 가동하고 있다. 현장, 얼마나 달라졌나?=법과 제도의 개선은 그러나 현장에까지 닿아 있지 않다. 건설환경을 이루는 각 사슬들이 튼튼하게 엮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건축가 이일훈(후리건축 대표)씨는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형참사는 자격 있는 회사가 설계·시공한 것이었다. 형식적으로 법을 잘 지켰다고 해서 튼튼한 집이었는가”라고 반문한다. “구조기술사들한테 충분한 대가를 준다면 구조설계를 잘하라거나 구조설계대로 시공이 잘 되는지를 충분히 관리감독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삼풍참사 때는 현장에서 건축주가 감리비용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상주감리가 부실했다. 구조계산이나 설계·감리에 적정한 대우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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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형건물에서 의무화돼 있는 ‘상주감리’ 제도는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보통 공사비 100억원 정도의 건물이라면 설계비는 5억원, 감리비는 6억~7억원을 책정해야 한다. 감리비가 설계비보다 더 많이 드는 이유는, 건축구조·설비·전기·소방분야의 전문가들이 공사기간 내내 현장에서 상주하는 직접경비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삼풍사건을 계기로 구조기술사의 중요성은 널리 알려졌지만 활동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 구조설계 전문가는 “재건축 아파트를 지을 때 설계비를 평당 3만원으로 책정해놓고 1만8천원을 조합에 리베이트 비용으로 주고 난 뒤 1만2천원을 설계비로 지급하는 게 관행이다. 이렇게 되면 구조설계비는 평당 1천원밖에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안전진단 때도 구조기술사는 소외된다. 현재 우리나라엔 구조안전진단 전문기관이 200여곳 활동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구조기술사가 없는 상태다. 건축구조기술사 이창남(센구조연구소 소장)씨는 “이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정형외과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삼풍백화점의 경우 공무원들이 준공검사 등을 요식적으로 행한 것도 부실의 원인으로 꼽혔지만, 실제로 공무원들이 일일이 현장을 찾아다니며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 임계호 건축과장은 “어차피 감리자와 허가권자가 분리돼 있는 상황에서는 감리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임과 권한 명확히=결국 모든 문제는 다시 ‘책임’과 ‘권한’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건축가 김원(광장건축 대표)씨는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공무원 등 건설업 관련자들에게 정당한 대가와 권한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정확히 묻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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