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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취재후기] 새마을운동에 대한 단상

등록 2005-06-26 16:20수정 2005-06-26 16:20

 구미발 새마을 열차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구미발 새마을 열차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새마을의 성지’ 를 찾아 지난 14일 아침 6시45분 구미발 새마을호 열차에 올라탔다. 공교롭게도 취재를 할 단체와 열차의 앞 글자가 같았다. ‘새마을’ 열차는 고속철도가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였다. 이제는 육상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빠른 자리를 고속철도에 내줬지만, 그 위용은 아직도 여전하다.

어렸을 적, 새마을에 대한 기억은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살기좋은 새 마을을 가꾸세~♬”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노래가 끝날 무렵 농사꾼이던 나의 아버지는 늘 ‘새마을’이 적힌 모자와 옷을 입고는 어디론가 바삐 집을 나섰다. 이윽고 동네 한 어귀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도로와 하수구 정리정돈에 구슬땀을 흘렸다. 동네 어르신들이 하루 부산을 떨면 동네 곳곳은 깔끔해졌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동네 단위로 조직된 모임에서 주말 아침마다 마을 청소를 할 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갔다. 선생님들은 동네 대표 한 사람을 두고 아침 청소 유무를 항상 보고하게 했다. 그런 행동에 ‘왜?’ 라는 물음을 제기해 본 적은 없다. 응당 해야될 ‘임무’처럼 느꼈다.

▲ ‘새마을노래’ 악보.

언제부터인지 이런 모습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다만 이제 마을 어귀에는 새마을 표지석이 과거의 위세를 추억하듯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아버지도 늘 쓰셨던 ‘새마을’ 모자 대신 농약 제조사에서 준 사은품 모자를 쓴다. 집에서도 ‘새마을’ 모자는 장롱 한켠에 보관돼 있다. 새마을의 추억은 내 머리 속에서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새마을운동을 한국사회 ‘성장의 원동력’으로, 다른 사람은 국가 명령에 의한 ‘동원’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엇갈린 평가 속에도 새마을은 여전히 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새마을’이란 이름은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최근 새마을운동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베트남 지도자들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방문했다는 기사가 신문·방송에서 연이어 나왔다. ‘새마을의 성지’ 경상북도에서는 호재를 만난 듯 홍보에 여념이 없다. 아직도 경상북도의 자치단체 곳곳에는 ‘새마을과’라는 특이한 조직이 남아있다. 새마을단체에 대한 지원도 남다르다. 경북 구미시에는 5Km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도와 시 새마을회관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도 새마을회관은 1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공사가 한창이고, 구미시 새마을회관은 올해 1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공사할 계획이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예산낭비’라고 지적하지만, 담당공무원들은 “지원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태연한 태도다.

현재 새마을중앙회는 전국 시·군·구와 읍·면·동 단위까지 하부조직을 두고 있다. 회원수만 230만여명에 이른다. 새마을지도자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 새마을금고 등 ‘새마을’ 이름으로 묶인 관련단체의 조직 크기도 엄청나다. 거대한 조직은 대규모 청중을 동원할 때 애용돼왔다. ‘관변단체’라는 별명도 이렇게 해서 생겼다. 그러나 정부나 자치단체는 ‘정액보조단체’라고 부른다. 이 이름에는 많은 돈의 보조금을 ‘당근’으로 지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부·지자체와 새마을단체는 서로의 필요에 의한 공생관계를 유지한 셈이다.


이런 고리는 지난 2003년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사회단체 보조금 편성 지침이란 것까지 내려 ‘정액보조단체’라는 것을 없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자치단체들이 ‘정액보조’ 만큼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관변단체라는 말은 사라져도 새마을의 긴 생명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변화의 시기를 맞아 새마을운동도 새로운 생존기반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게 ‘새마을회관’ 사업이다. 자치단체나 정부로부터 돈을 지원받아 큰 건물을 짓는 것이다. 건물 가운데 일부는 새마을 조직의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건물들은 임대사업을 펼친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래방과 여관 등의 임대사업까지 벌였다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결국 자생을 위해 지원해준 건물이 ‘돈’되면 ‘공공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아무 사업이나 ‘새마을회관’에 입주해 있는 것이다. 애초 ‘새마을’의 취지와도 큰 거리가 있다. ‘국민운동단체’에 맞게 변한다고 하지만, 기자에게는 변했다는 느낌보다는 ‘구태’의 반복만이 보인다. 진정한 새마을운동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21세기 새마을운동의 살길이 아닐까?

<한겨레>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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