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발 새마을 열차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새마을의 성지’ 를 찾아 지난 14일 아침 6시45분 구미발 새마을호 열차에 올라탔다. 공교롭게도 취재를 할 단체와 열차의 앞 글자가 같았다. ‘새마을’ 열차는 고속철도가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였다. 이제는 육상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빠른 자리를 고속철도에 내줬지만, 그 위용은 아직도 여전하다. 어렸을 적, 새마을에 대한 기억은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살기좋은 새 마을을 가꾸세~♬”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노래가 끝날 무렵 농사꾼이던 나의 아버지는 늘 ‘새마을’이 적힌 모자와 옷을 입고는 어디론가 바삐 집을 나섰다. 이윽고 동네 한 어귀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도로와 하수구 정리정돈에 구슬땀을 흘렸다. 동네 어르신들이 하루 부산을 떨면 동네 곳곳은 깔끔해졌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동네 단위로 조직된 모임에서 주말 아침마다 마을 청소를 할 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갔다. 선생님들은 동네 대표 한 사람을 두고 아침 청소 유무를 항상 보고하게 했다. 그런 행동에 ‘왜?’ 라는 물음을 제기해 본 적은 없다. 응당 해야될 ‘임무’처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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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리는 지난 2003년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사회단체 보조금 편성 지침이란 것까지 내려 ‘정액보조단체’라는 것을 없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자치단체들이 ‘정액보조’ 만큼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관변단체라는 말은 사라져도 새마을의 긴 생명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변화의 시기를 맞아 새마을운동도 새로운 생존기반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게 ‘새마을회관’ 사업이다. 자치단체나 정부로부터 돈을 지원받아 큰 건물을 짓는 것이다. 건물 가운데 일부는 새마을 조직의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건물들은 임대사업을 펼친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래방과 여관 등의 임대사업까지 벌였다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결국 자생을 위해 지원해준 건물이 ‘돈’되면 ‘공공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아무 사업이나 ‘새마을회관’에 입주해 있는 것이다. 애초 ‘새마을’의 취지와도 큰 거리가 있다. ‘국민운동단체’에 맞게 변한다고 하지만, 기자에게는 변했다는 느낌보다는 ‘구태’의 반복만이 보인다. 진정한 새마을운동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21세기 새마을운동의 살길이 아닐까? <한겨레>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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