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추가증거 공개 놓고 공방 치열
12시간20분.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67) 전 국무총리의 세번째 재판은 4일 오후 2시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 2시20분에야 끝났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전직 건설업자 한아무개(50·수감중)씨의 진술 번복으로 검찰과 변호인 사이에 사활을 건 공방이 벌어진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우진) 주재로 열린 3차 공판에서는 2차 공판에서 못다 한 한씨에 대한 검찰 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한씨 신문은 재판 시작 1시간 뒤인 오후 3시에야 시작됐다. 검찰이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추가 증거를 공개하려 하자 변호인들이 이를 제지하며 설전이 벌어진 탓이다.
한씨가 교도소에 면회 온 어머니와 한 전 총리 쪽에 3억원을 돌려받는 문제를 상의한 대화 녹취가 추가 증거로 제출되자 한 전 총리의 변호인은 “그건 서면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검찰은 “공판중심주의는 서면조사의 폐해를 막자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재판장이 “입증취지는 말로 설명하자”며 중재에 나서 한씨에 대한 검찰 신문이 시작됐지만, 이번엔 한씨가 교도소에서 부모와 나눈 접견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하는 게 쟁점이 됐다. 검찰은 한씨가 부인하자 녹음 파일을 틀겠다고 했고, 변호인은 “증거조사를 받지 않은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공개할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입씨름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처럼 검찰은 한씨의 법정 진술이 거짓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입증하려 공세의 강도를 높였고, 변호인들은 방어에 안간힘을 썼다. 이 과정에서 감정싸움도 벌어졌다. 한 전 총리 변호인이 “오늘 재판이 지연되는 이유는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검찰이 디자인한 상황인데, 왜 변호인의 방어권 활용을 탓하느냐”고 공격하자, 검찰은 “디자인은 법정 용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판이 늘어지면서 이날 예정됐던 경기 고양시 일산 지역 건설업자 박아무개씨 등과 한씨의 대질신문도 미뤄졌다. 박씨 등은 한씨가 지난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는 돈 가운데 5억원을 가져갔다”고 지목한 사람이다. 박씨 등은 재판이 시작된 오후 2시부터 대기했지만 밤 11시에 맥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들의 대질신문 등이 진행될 다음 공판은 11일 오전 10시부터 열린다.
김태규 노현웅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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