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탁·국외도피 권유 등 추궁…정관계 수사확대 촉각
건설현장 식당운영업체 대표 유아무개(65·구속 기소)씨의 금품 로비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이번주 초부터 유씨한테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이들을 소환하는 등 수사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유씨한테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출국금지 조처된 강희락(59) 전 경찰청장을 10일 오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9일 밝혔다. 검찰은 또 35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는 이길범(57) 전 해양경찰청장도 주초에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씨가 강 전 청장 등 경찰 수뇌부와의 친분을 이용해 10여명의 총경급 간부한테서 인사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강 전 청장을 상대로 유씨한테 인사청탁과 함께 돈을 건네받았는지 여부를 추궁할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강 전 청장이 유씨가 구속되기 직전에 돈을 주고 해외 도피를 권유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두 사람 사이의 통화 내역 등을 확보해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한편 수사 초기 건설업체 임원들에 대한 로비 수사가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로 번지면서 이번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유씨한테서 2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이아무개(59) 한화건설 대표를 구속했고, 지난 4일까지 5개 건설사 임원 등을 기소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유씨가 경찰 고위직 간부와 정치인, 그리고 관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과시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나오면서 수사 대상이 확대됐다.
유씨한테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화건설 이 대표도 지난 4일 법정에서 “유씨가 경찰 고위직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민원을 부탁했더니 금방 해결해 놀랐다”고 말해, 유씨의 로비 정황을 뒷받침했다.
유씨는 자신의 매제와 처남 등 가족을 포함한 수십명의 ‘2차 브로커’를 동원해 문어발식으로 건설현장 식당(함바집) 알선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식당 사장들에게 강 전 청장 등 경찰 고위 인사와의 친분을 앞세웠으며, 이런 친분관계는 건설사 임원들에게도 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유씨는 2008년 경남 통영의 지역 문화단체 2곳에 1억여원을 기부하는 등 부산·경남권 일대에서 ‘큰손’ 노릇을 했으며, ‘유 회장’ 등으로 불리며 휴대전화 13개와 가명이 적힌 명함 등을 사용하며 여러 사업에 손을 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씨를 처음 경찰에 고소했던 홍아무개씨는 “함바집 운영권을 따주겠다는 유씨한테 속아 1억원을 날렸다”며 “나 말고도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주장했다. 건설현장에 들어서는 식당은 비교적 큰 이익이 남는데도 입찰 과정과 자금 흐름 등이 투명하지 않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영역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어지간한 끈 없이 큰 공사현장 식당운영권을 따낼 수 없다”며 “뒷돈을 냈다가 떼이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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