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광순(56·사진 왼쪽)씨
치매 어머니 돌보려 ‘낙향’
명상하며 노인환자들 치료
이주여성 무료상담도 시작
명상하며 노인환자들 치료
이주여성 무료상담도 시작
계룡산 갑사자락에 유일한 한의원 연 고은광순씨
여성운동가인 한의사 고은광순(56·사진 왼쪽)씨가 산골 마을에서 새로 개업했다. 호주제 폐지, 종교법인 세금납부운동 등 ‘세상을 고치는 의사’로 활약했던 고은씨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의원 문을 닫고 충남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자락으로 낙향했다. “한의사로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다.
새해 첫날 문을 연 솔빛한의원은 계룡면에 하나뿐인 한의원이다. 그는 한의원 운영 걱정보다 시골 어르신들이 눈에 먼저 밟힌다. 시골에는 오랜 노동으로 뼈·관절·인대 등이 퇴행 증상을 보이는 근골격질환을 앓는 노인 환자들이 많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웬만한 병은 참는다. “공주에 있는 병원을 다녀오려면 하루해가 다 간다고 말씀들 하세요. 그분들에게 시간이라도 절약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고은씨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갑사 자락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고된 시집살이에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 일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다. 이들은 가족간에 갈등이 생겨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대부분 우울증에 시달린다. 한의학에서는 마음이 병을 낳는 주요한 원인으로 본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속 얘기를 털어놓기만 해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몸의 질병을 유발 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현재의 상황을 감사하고 즐길 줄 알게 되면 심신이 건강해지죠.”
고은씨는 이주여성을 위해 무료 상담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새로 발간된 계룡면 전화번호부에 30만원을 들여 ‘가족·인간관계로 고민하시는 분 무료상담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다루면서 10여년 이상 명상을 해 온 그는 ‘도반’들과 이주여성들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
그가 시골로 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다. 어머니의 병세는 2009년 요양소에 들어간 뒤 1년쯤 지나자 거동을 못 할 정도로 악화됐다. “어머니의 남은 시간만이라도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지난 10월 낙향을 감행했고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배운 명상의 핵심 가르침을 한의원 게시판에 적어 놓았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치유되라 명상합시다. 그러면 나도 빨리 낫는답니다.” 나에게 집착하지 말고 남에 대한 배려심과 이타심을 갖게 되면 몸 안에 이로운 물질들이 많이 나와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회의 변화를 위한 요구와 주장을 많이 해왔지만 앞으로는 저와 주변인들의 내공을 키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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