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8일 일어난 화재로 마을의 절반가량이 불에 탄 서울 서초동 산 160번지 산청마을이 16일 오후 인적이 끊긴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르포] 최악 한파 덮친 달동네·비닐하우스촌
단열 잘 안돼 웃풍 심해…실내에 놔둔 김치도 얼어
비닐·테이프로 임시조처…잠자러 마을회관 찾기도
단열 잘 안돼 웃풍 심해…실내에 놔둔 김치도 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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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아침 8시께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로 오르는 골목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걷기가 힘들었다. 인적이 없는 골목들 사이로 검은색 비닐로 덮인 지붕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바깥에 얼굴을 내놓고 자는 것 같아.” 박경술(76)씨는 안방에서 두꺼운 검은색 점퍼를 입은 채 미역국과 김치로 아침을 해결하던 참이었다. 방바닥은 데워질 틈이 없었고, 하얀 입김이 쉴새없이 뿜어져나왔다. 박씨는 “지난해 태풍에 날아간 지붕을 구청이 고쳐줬지만, 외풍은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동네 집들의 지붕을 덮고 있는 검은 비닐은 지난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다. 그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주민들은 기록적인 한파로 신음하고 있었다.
10년 전 이곳에 홀로 자리잡은 박씨는 심부전증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장애인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 구청에서 받는 40여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겨울 한철에 30만원 정도 기름을 넣어. 아껴 쓰려고 하루에 1시간30분씩 두 번만 보일러를 돌려. 전기장판을 종일 켜놓지만 외풍이 심해서….” 그는 방 한켠에 있는 소주병을 가리키며 “너무 추울 때는 소주 반 병씩 마시고 잔다”고 말했다.
생긴 지 40년이 넘은 마을의 낡은 집들은 비닐과 테이프로 추위를 막고 있었다. 지난해 재개발이 결정된 뒤 집주인들이 보수를 꺼린다고 했다. 25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이아무개(81)씨의 집은 지붕이 내려앉아 방 천장이 기울어 있었다. “대충 해놓고 사는 거지. 눈이 많이 오면 걱정부터 돼. 지붕이 아예 내려앉을까봐.” 그는 “집주인은 ‘집이 위험하니 나가라’고 하는데, 보증금 500만원 갖고 어디 갈 데가 없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의 방은 그나마 연탄은행에서 가져다 준 연탄이 간신히 온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동네 골목에서 만난 정분임(75)씨도 “어제오늘 같으면 진짜 못 살 것 같아. 날씨까지 이러면 여기서 사는 게 너무 팍팍해”라며 하늘을 탓했다.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 가운데 하나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만난 오송헌(78)씨도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추운 건 처음”이라며 “연탄 보일러는 얼지 않아 다행인데, 수돗물이 터질까봐 이틀 내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3평짜리 가게를 운영하는 오씨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한다. 그는 “이런 집들은 벽에다 단열재를 제대로 넣지 않고 엉성하게 지어서 그런지 웃풍이 심해 얼굴이 시리다”고 말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어진 박아무개(68)씨의 집 마루는 차가운 냉기에 발이 시릴 정도였다. 박씨는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덧신을 두 개 겹쳐 신은 채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거실에 놓아둔 김치는 꽁꽁 얼어 있었다. 자식들에게 가끔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박씨는 “기름이 아까워 못 쓰겠다”며 전기난로에 의지해 한파를 견디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화재로 21가구가 잿더미로 변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비닐하우스촌 ‘산청마을’ 주민들은 전날 얼어터진 수도 때문에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굴렀다.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이날 아침 컨테이너를 개조한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최아무개(73)씨는 “남의 집 창고방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 새벽에 마을회관으로 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물이 나오는 집에 가서 물을 길어다 밥과 설거지를 하느라 고생했다”며 “추위까지 우리를 괴롭힌다”고 말했다.
이유진 엄지원 박보미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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