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신문관행에 면죄부” 항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미성년자가 “변호인 신문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아버지 쪽 변호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한겨레> 1월12일치 10면)을 법원이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34단독 윤태호 판사는 29일 아버지에게 상습 성폭행을 당해 아버지를 고소한 ㅇ(16)양이 정아무개 변호사를 상대로 “변호인 신문 과정에서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낸 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윤 판사는 “변호인이 신문권에서 벗어나 피해자에게 수치감을 주려고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었다”며 “변호인의 질문이 경찰이나 검찰 조사에서 이미 나온 내용이었으며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였기 때문에 위법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ㅇ양의 소송대리인인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필요한 질문을 하고, 이를 법정에서 구태의연하게 반복하는 관행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법정에서 변호인이 ㅇ양에게 키와 몸무게, 첫 월경 시기를 물었고, 심지어 ‘첫 경험이었냐’ 등 사건과 무관한 질문을 해 정신적 충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받을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건과 무관한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법원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ㅇ양은 8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강제추행을 당한 뒤 11살 때부터 4년 동안 성폭행으로 고통받아왔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아버지에 대한 재판에서 ㅇ양에게 “소리를 질렀으면 밖에서 들었을 텐데 저항했나” 등의 질문을 했다. 재판 뒤 충격을 받은 ㅇ양은 강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죄인 취급을 한 변호사를 혼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1월 소송을 냈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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