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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보단체까지 성매매특별법 비판 나서다

등록 2005-06-29 22:03수정 2005-06-29 22:03

참석자들이 비닐 등을 이용해 얼굴을 가린 채  연설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참석자들이 비닐 등을 이용해 얼굴을 가린 채 연설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현장] 집창촌 여성들 ‘성노동자의 날’ 선포식…“성노동권 인정하라”

“성매매 여성도 인간이다. 생존권 보장하라.” “성노동자 스스로 삶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

2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옆 공터.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흐린 날씨에도 전국 집결지에서 모인 성매매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집결지 여성들은 이날 스스로 노동자임을 외치며 ‘성노동자의 날’을 선포했다.

집결지 여성들의 모임인 전국한터여성종사자연합 주최로 열린 이날 선포식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성노동자준비위원회’를 꾸리고, 합법적인 성 노동자로서 자신들을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서울 용산, 미아리, 영등포, 수원, 부산, 포항, 부산 등 전국 12개지역에서 모인 집창촌 여성과 집창촌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전국연합 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오후 5시 시작할 예정이었던 집회는 무대차량의 집회장 진입을 놓고 공원관리사무소 쪽과 벌어진 실갱이 탓에 예정시각보다 1시간이 늦은 오후 6시께 시작되었다. 선포식은 당초 체조경기장에서 ‘성노동자의 날’ 문화제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이틀 전 경기장 대관이 갑자기 취소돼 초청가수 공연과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상영 등 문화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사회를 맡은 한터 쪽 관계자는 “당초 경기장 관계자들이 행사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행사 이틀 전 갑자기 취소했다”며 “우리 행사를 방해하려는 여성부 쪽이 뒤에서 압력을 넣은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강제적 성매매가 아니라 서비스업인 매매춘이다”
▲ 전국 성매매 업소 집결지 종사 여성과 업주 등 1천여명이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전국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


이날 선포식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전국성노동연대 한여연’이라는 조직을 꾸리고, 각 지역별 대표와 전국 대표를 만장일치로 뽑았다. 본격적인 선포식에서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23일 이후 성노동운동 투쟁일지가 보고되었고, 성매매 특별법 시행 뒤 전국 집결지에서 자살한 성매매 여성들의 사건 일지가 낭독됐다.


한여연 고문을 맡고 있는 이선희(33)씨는 “성매매는 인신매매 등의 부정적인 개념이고, 우리는 돈을 받고 자발적으로 손님이 원하는 것을 서비스해주는 매매춘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자발적인 서비스 노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성 노동자이고,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오늘 선포식은 우리가 성 노동자임을 선포하고 노동권과 생존권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자발적인 모임”이라며 “앞으로 정부와 여성계를 상대로 성 노동권 인정과 성매매 특별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선포식 주변에는 성매매와 성노동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진보연대와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활동가들은 ‘성매매 여성들도 노동자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달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행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사회자가 이들을 소개할 때 성매매 여성들은 열띤 호응과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진보단체·여성학자까지 등장 “성노동은 감성노동의 일부…비범죄화로 가야”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은 “주부들의 가사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노동에 대한 부정”이라며 “성노동을 부정한다고 인신매매, 감금, 폭행 등 폭력적인 현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호 국장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함으로써 이들이 주체적으로 집결지 내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선포식에 연대발언을 한 이성숙씨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씨는 자신을 한양대와 연세대에서 성의 역사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강사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성 노동도 감성노동의 일부이고 인류는 오랜 매매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매매춘 정책은 폐쇄가 아니라 특정지역에서 매매촌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비범죄화를 목표로 두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집결지 주변의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청량리 주변에서 옷가게를 하는 하아무개(32)씨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옷가게나 화장품 가게, 시장 등 주변 상인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다”며 “성 노동자라는 어려운 개념은 잘 모르겠고 나도 특별법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하씨는 “특별법이 시행된 뒤 집창촌은 폐허로 변했지만 성매매는 줄어들지 않고 음성적으로 주택가까지 파고 들고 있다”며 “그런 음성적 성매매는 성병 발병이나 인신매매, 폭력만 부추길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매매 여성 “이 일 아니면 월 30만원짜리 일밖에 없어”

선포식에 참석한 성매매 여성들도 자유롭게 일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서아무개(25)씨는 “오늘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 여성들은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사회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집결지 안에서 이뤄지는 감금, 폭행, 인신매매는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업소생활 2년째라는 서씨는 “특별법이 시행된 뒤 먹고살기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해보았으나 한 달에 30만~50만원 받는 일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며 “내가 일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아직도 이 일 해서 동생들 학비대고 가족들 먹여살리는 동료들이 많다”며 “높으신 분들이 이런 우리 사정을 안다면 특별법을 폐지해서 자유롭게 일할 권리를 달라”고 말했다.

이날 성매매 여성들은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출범 선언문을 발표했다. 한여연은 출범 선언문에서 “여성계 권력자들은 성매매 특별법을 통해 우리 성노동자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이 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누구의 간섭과 인신매매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성노동자”라고 주장했다.

한여연은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겉으로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호칭을 붙여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자활시키겠다는 등 성노동자들을 위해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성노동자들에게 오명과 낙인을 찍으며 시혜를 베푸는 기만행위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한여연은 10대 규약을 발표하고 행사를 마쳤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한여연 10대 규약

1. 성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2. 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각종 인권유린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3. 성노동자가 질병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건강권 보호를 위해 투쟁한다.
4. 성구매자인 남성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에 적극 반대한다.
5. 성노동자와 정직한 업주간의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6. 인신매매, 감금, 갈취, 폭행 등이 개입된 범죄적인 성매매 행위에 절대 반대한다.
7. 성노동과 탈 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8. 민의를 역행한 반인권적인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위해 투쟁한다.
9. 성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조직화를 위해 노력한다.
10. 성노동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제 민주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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