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초의 원주민 출신 장교인 렉 손더스(당시 31세) 대위가 한국전쟁 때 호주군의 최대 격전지로 유명한 경기도 가평전투에서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끝까지 막아내 수도 서울을 수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30일 호주온라인뉴스는 호주 전쟁기념관과 연방보훈부 전사 자료를 인용해 손더스 대위가 1951년 4월 23-24일 가평전투에서 수적으로 월등한 중공군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전했다.
호주군연대 3대대 A중대에 소속된 그는 A중대를 이끌던 오다우드 소령이 전투에서 부상당하자 그를 대신해 A중대를 지휘했고, 이후 A중대의 예비중대인 C중대를 맡으며 대위로 승진했다.
C중대는 중공군과 싸우면서 32명이 전사하고 53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지만손더스 대위의 지휘 하에 끝까지 중공군과 싸워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호주군 3대대는 이 전투로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손더스 대위의 상관이었던 벤 오다우드 퇴역 소령은 호주 보훈부의 전사 자료에서 증언을 통해 "그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는 항상 곁에 두고 싶은 부관이었다"고 회상했고, 그의 부하는 "대원들은 그가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나섰다"고 찬사를 보냈다.
손더스 대위는 371고지 탈환을 위한 전투를 마지막으로 1952년 10월 호주로 귀국한 후 1954년 퇴역했다.
1901년 이후 수 천 명의 호주 원주민들이 호주방위군에 입대해 참전, 더러 훈장을 타기도 했지만 원주민이 호주군 장교로 임관한 것은 렉 손더스가 처음이라고 연방보훈부는 밝혔다. 빅토리아주 서부 프램링햄 원주민보호구역 부근에서 태어난 손더스 대위는 4세때 모친을 여의고 1차 세계대전에 호주대영제국군(AIF)의 일원으로 참전한 부친과외삼촌 밑에서 자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모병 소식을 들은 그는 1940년 입대해 3개월만에 고속진급했고, 리비아 전투를 시작으로 그리스 및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여러 전투를 치른 후 1942년 8월 호주로 돌아오지만 곧바로 파푸아 뉴기니로 파견됐다. 호주 원주민으로서는 최초의 사관후보생으로 지명 받은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전쟁 중 대위로 진급했다. 그는 1971년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았으며 1985년 호주 전쟁기념관 자문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1991년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연합뉴스)
1901년 이후 수 천 명의 호주 원주민들이 호주방위군에 입대해 참전, 더러 훈장을 타기도 했지만 원주민이 호주군 장교로 임관한 것은 렉 손더스가 처음이라고 연방보훈부는 밝혔다. 빅토리아주 서부 프램링햄 원주민보호구역 부근에서 태어난 손더스 대위는 4세때 모친을 여의고 1차 세계대전에 호주대영제국군(AIF)의 일원으로 참전한 부친과외삼촌 밑에서 자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모병 소식을 들은 그는 1940년 입대해 3개월만에 고속진급했고, 리비아 전투를 시작으로 그리스 및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여러 전투를 치른 후 1942년 8월 호주로 돌아오지만 곧바로 파푸아 뉴기니로 파견됐다. 호주 원주민으로서는 최초의 사관후보생으로 지명 받은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전쟁 중 대위로 진급했다. 그는 1971년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았으며 1985년 호주 전쟁기념관 자문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1991년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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