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양형 받으려 거짓자료
사실 인정하고도 “처벌 못해”
사실 인정하고도 “처벌 못해”
이건희(69)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자녀들에게 헐값에 넘겨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1심 판결을 닷새 앞둔 2008년 7월11일, 재판부에 선처를 바라는 ‘양형 참고자료’를 냈다. 자료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회사의 손실 여부를 떠나 공소장에 피해액으로 되어 있는 돈을 지급한다”는 게 요지였다. 특검이 기소한 두 회사의 손실액은 모두 2508억원(삼성에스디에스 1539억원·삼성에버랜드 969억원)이었다. 유무죄 판결에 상관없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손실액 전부를 변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을 거치며 배임액은 227억원으로 줄었고, 이 회장은 애초 약속과 달리 무죄 금액 2281억원을 두 회사에서 돌려받았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4월, 이 회장에게 돈을 돌려준 삼성에스디에스와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임직원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이석환)는 이 회장이 “기소 때 밝혀졌던 피해액 전부를 변제하겠다”고 재판부에는 밝혀놓고 뒤로는 사후 정산하기로 한 정반대의 약정을 맺었다고 밝혔지만, ‘이면계약’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배임죄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이 회장 쪽이 세부약정서를 첨부하지 않고 ‘공소장 기재 금원 지급 관련’ 서면만 제출함으로써 법원에서 유리한 양형 판단을 받는 자료로 사용되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 회장의 ‘법원 기망행위’를 사실상 인정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자료를 근거로 다시 이 회장을 위계(거짓으로 꾸민 계책)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과 같은 무혐의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김창희)는 21일 “법원 판례상 거짓말로 인한 공무집행 방해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며 “법원에 거짓 자료를 냈다고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하면 수사기관을 상대로 한 모든 거짓말을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의 변호인과 두 회사 실무자 사이에 이뤄진 일이어서, 이 회장을 소환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번 무혐의 결정으로, 법원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이 회장에게는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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