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군대 ‘알몸 얼차려’ 사진 감상법…“자존감 무너뜨려 꼬붕을 만들다”
‘알몸사진’.
‘누드’라고 농담하기엔 너무 처량한 알몸사진 몇 장을 지난 29일 인권실천시민연대가 공개했다. 벌거벗은 채, 연병장에서 줄을 맞춰 섰거나, ‘원산폭격’을 하거나, 팬티를 뒤집어쓰고 ‘오리걸음’을 하는 모습은 차라리 서글프다. 군용트럭 보닛 위에 무릎 꿇은 모습은 “장난 삼아서…”라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고참이 젖꼭지를 만지면서 ‘여자 친구가 해주면 좋고, 내가 해주면 기분 나쁘냐’고 묻고, 신병 샤워를 시킨다며 데려가 ‘같이 자위행위를 하자’고 했다”(지난 11월 전역한 박아무개씨)는 증언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탈적 성취향의 표현’ 정도로 제쳐두자.
우리의 관심은 인권실천시민연대가 공개한 사진에서 드러난 몇 장의 알몸 얼차려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모습이든, “인권침해가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그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무장해제’다.
‘난 아무 것도 아니다’ 정신적 외상 남겨…가장 저급한 파시스트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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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시민단체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수집해 공개한 군대내 알몸사진. 훈련 중 하의를 벗은 채 얼차려를 받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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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 전문가는 “동성간의 일탈적 성 취향과 알몸 얼차려는 구별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말을 꺼냈다. 그는 “알몸을 강요하는 것은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계급적 위계를 통해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고, 복종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모욕을 통해 인격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군 사법제도를 연구해 온 이계수 건국대 교수(법학)의 설명도 비슷하다.
이 교수는 “인간에게 존엄과 가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며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부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몸 얼차려는 가장 동물적인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넣음으로써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정신적 외상을 남기는 가장 저급하고 파시스트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신체에 대한 학대의 경험을 통해 한 인간의 인격적 통합성을 무너뜨린다”는 군 심리학 전문가 조용범 박사(임상심리학·이화여대 겸임교수)의 말도 서로 닿아있다. “내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혼란스러웠다”는 한 전역병의 증언은 이 분석만큼 생생하다.
발가벗겨진 ‘무장해제’는 뒤틀린 권력 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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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시민단체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수집해 공개한 군대내 알몸사진. 알몸 상태로 얼차려를 받는 병사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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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겨진 ‘무장해제’는 뒤틀린 권력을 낳는다.
한 군 전문가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취조에 앞서 속옷까지 발가벗겼던 것도, 한 개인의 인간성을 해체하고 피동적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라며 “왜곡된 권력형성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조용범 박사는 “이라크 포로들의 옷을 발가벗기고 성적으로 학대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군 간부들이 징집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꼬붕’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또 다른 군 전문 교수의 설명은 왜곡된 권력형성의 뿌리를 알려준다. 알몸은 ‘꼬붕’을 복종하게 만들고, “충성”을 받아내는 최고의 도구였던 셈이다.
알몸 얼차려는 군대의 본질에서 태어나, 다시 그 뿌리를 공고히해왔다.
명령과 복종. “충성”은 군대의 생명이다.
“별놈”이 다 “끌려와서” 대충 “때우는” 한국 군대지만, 명령과 복종은 더욱 강조된다.
군 형법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거나, 국제법에 반하는 행위는 불복할 수 있다”고 명시한 독일의 사례는 물리적 거리만큼 멀다.
한국사회 전체에 피학적·권위주의적 문화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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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시민단체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수집해 공개한 군대내 알몸사진. 알몸의 병사들이 군 차량위에 올라가 얼차려를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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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범 박사의 분석은 어렵지만, 유익하다.
“‘알몸으로 있는 나는 절대적인 권력에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피학적 상태에 있던 사람이 자그만한 권력을 누리면 가학적 행위로 바뀐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성인들을 발가벗기고 인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만끽한다. 상대방에 대한 피학적 행동을 통해 권력의 욕망과 쾌락적 해방감을 느낀다. 가학성과 피학성의 조합인, 사도매조히즘을 느끼는 것이다.” 조 박사는 이를 ‘노예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무장해제는 권력을 낳고, 그 권력은 노예화로 이어진다.
노예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비합리적인 의식의 배출이자, 재생산이다. 부조리에 순응하는 인간이라는.
조 박사는 성매매 여성의 사례를 비유로 들었다.
“성적 착취를 하기 위해 더 강력한 성적 경험에 노출시켜 버리는 것과 같다. 나중에는 성착취를 당연하게 느끼고 즐기게 되고, 자기 자신이 사회를 위해 공헌한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쾌락이라고 하지만 적응이다.”
발가벗겨진 굴욕적 상태에서 겪은 복종의 경험이 불합리성이나 부조리에 대한 순응적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덧붙였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도 윤리적·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비합리적 의식상태로 배출되고, 다시 사회에서 재생산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사회의 피학적·권위주의적 조직문화의 한 근원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알몸이여, 복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