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흐름도
그림건넨 즈음 경쟁자
내부감찰 받은뒤 사퇴
내부감찰 받은뒤 사퇴
단순한 선물인가, 청탁성 뇌물인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차장일 때 전군표 당시 청장에게 고가의 <학동마을> 그림을 건넨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당사자들은 ‘선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림 로비’ 의혹을 정조준한 검찰로서는 이 ‘선물’의 대가성을 밝혀내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됐다.
‘그림 로비’ 의혹은 2009년 1월, 전씨의 부인 이아무개씨가 폭로했다. 2007년 초 1급 인사를 앞두고 한 차장 부부가 <학동마을>을 주면서 “경쟁자인 김아무개 지방국세청장을 밀어내달라. 종교재단에 거액 헌금을 했다는데 그 부분을 캐면 되지 않겠느냐”며 구체적인 ‘제거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검찰에 나와서는 “대가성이 없는 선물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한 전 청장도 지난달 28일 조사에서 인사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이 ‘그림 선물’의 성격을 놓고 공여자(한상률)와 수수자(전군표)의 증언이 일치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대가성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그림이 건네진 2007년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한 차장이 ‘찍어내 달라’고 했던 김 전 지방국세청장(이하 지방청장)은 한 차장과 행정고시 제21회 동기로 차기 국세청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특히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그 시점엔, 충남 출신인 한 차장보다는 대구 출신인 김 지방청장이 좀더 유리했다는 게 국세청 내부의 평가였다. 그러나 김 지방청장은 갑자기 혹독한 내부 감찰을 받았고, 그해 4월 갑자기 사직했다. 28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면서 퇴임식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국세청 전직원에게 퇴임사를 담은 전자우편을 보냈지만 그마저도 차단됐다고 한다. 김 지방청장은 이 퇴임사에서 “나를 음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조사담당관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떠났다. 한 전 청장은 청탁 사실을 한사코 부인하고 있지만 <학동마을>이 건너간 그즈음에 경쟁자인 김 지방청장은 공교롭게도 떠밀리듯 국세청을 나간 셈이다.
서울 지역 검찰청의 한 검사는 “뇌물 사건에서는 수수자와 공여자가 대가성을 부인해도, 금품이 건너간 시점에 그 대가로 무슨 혜택을 보았는지를 밝혀내면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김 지방청장을 상대로 강도 높은 감찰이 이뤄진 배경을 비롯한 김 지방청장의 사퇴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또 검찰은 2009년 “한 전 청장이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학동마을> 등 그림 5점을 갤러리에서 받았다”고 주장한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을 이날 불러 발언의 진위 여부를 캐물었다. 한편 김 전 지방청장은 이날 찾아간 <한겨레> 기자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김태규 노현웅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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