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100원’ 고단한 삶…서글픈 ‘폐지다툼’
화곡동 복개천길서 할머니 실랑이 끝 차에 치여
하루 만원벌이 빠듯…“날 풀리면 경쟁 더 심해”
하루 만원벌이 빠듯…“날 풀리면 경쟁 더 심해”
이아무개(66) 할머니는 서울 강서구 화곡4동 제물포로(복개천길) 일대에서 폐지를 줍는 이들 가운데 ‘신참’이었다. 화곡2동에서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지난해 4월에야 폐지 수집을 시작한데다, 나이도 다른 이들에 비해 어린 축에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 복개천길에 있는 가게에서 내놓는 상자가 많거든…. 그래서 할마씨들도 엄청 많아.” 이 할머니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신참’인 탓에 아는 가게가 많지 않아 조건도 불리했다. 그는 “많이 벌어야 하루에 1만원도 안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께, 이 할머니는 복개천길 3차로에서 종이상자를 줍고 있었다. 그러다 평소 안면이 있던 ㅇ(83) 할머니와 마주쳤다. 길가에 버려져 있던 종이상자 두세 개를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돈으로 치자면 300원남짓 받을 수 있는 양이다. ㅇ할머니가 2차로로 미는 바람에 이 할머니는 그 옆을 지나던 덤프트럭에 치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실려가 닷새 동안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이 할머니는 6일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트럭기사가 병원에 가자고 하더라”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 할머니는 20여년 전에 남편(68)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식당 주방일과 아파트 공사현장 청소 등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아들(37)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그 뒤 남편이 한 번 더 쓰러져 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사업에 실패한 아들도 신용불량자가 돼 살림은 크게 기울었다. 결국 힘들게 장만했던 다세대 주택을 팔아 지난해 화곡4동 방 두 칸짜리 월세집으로 이사를 왔고, 그때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나는 복개천길에서 젊은 편이야. 80~90살 먹은 노인네들도 많아. 나이 먹고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잖아.”
이 할머니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50㎏이 넘는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주웠다. 1㎏당 100~110원을 받고 고물상에 넘겼다. 이 할머니는 “그렇게 해도 월세는 커녕 병원비 대기도 빠듯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가 사고를 당했던 지역에서 고물상을 하는 박아무개(54)씨는 “2~3년 전부터 할머니들이 갑자기 늘어나, 폐지를 싣고 우리집을 찾는 할머니들만 해도 50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일도 경기를 타는지 최근엔 폐지가 많이 줄었다”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오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마음은 짠한데 그렇다고 돈을 더 쳐드릴 수도 없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는 퇴원도 하기 전에 다시 폐지 경쟁을 걱정했다. “이제 날씨 풀리면 젊은 애들이 자전거로 날아다녀.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묘한 기름값은 네탓”…계속되는 ‘폭탄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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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과 더불어 양극화의 그늘 또한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사진은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차상위계층 한 어르신의 뒷모습.
이 할머니는 퇴원도 하기 전에 다시 폐지 경쟁을 걱정했다. “이제 날씨 풀리면 젊은 애들이 자전거로 날아다녀.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묘한 기름값은 네탓”…계속되는 ‘폭탄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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