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김경준 판결문엔 ‘주가조작’ 등 개입 뚜렷
검찰의 에리카 김(47·한국 이름 김미혜)씨 수사가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귀국한 그를 소환 조사한 뒤 검찰은 “오래 들고 있을 사건이 아니”라고 했지만, 16일에는 “아직 검토할 게 많다”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가 “이명박 대통령이 비비케이(BBK)의 실소유주라는 주장은 거짓이었다”는 ‘반성문’을 쓰고, 그 대신 횡령 혐의 등에는 불기소 처분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에리카 김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동생(김경준씨)이 다 한 일로 나는 횡령과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횡령과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8년에 벌금 100억원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김경준(45)씨의 판결문을 보면, 에리카 김씨가 무혐의를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경준씨는 1999년 4월 비비케이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지만, 회삿돈 유용과 운용보고서 위·변조 행위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2001년 3월 등록이 취소됐다. 비비케이 투자자들의 투자금 반환 요구가 빗발치자 김경준씨는 그즈음에 인수한 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의 회삿돈에 손을 댔다. 옵셔널벤처스의 회삿돈 319억원을 빼내어 비비케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이라며 돌려주고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다. 이게 김경준씨의 횡령 범죄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판결문에서, 김씨가 2001년 8월부터 11월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옵셔널벤처스의 회삿돈 400만달러를 에리카 김씨와 그의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 명의로 만든 페이퍼컴퍼니 두곳의 계좌로 보냈다고 밝혔다. 횡령금이 에리카 김씨가 만든 계좌에 ‘꽂힌’ 것이다. 또 에리카 김씨는 자신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대표 자격으로 옵셔널벤처스 인수 계약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횡령과 주가조작의 도구로 이용된 옵셔널벤처스의 인수 초기부터 에리카 김씨가 깊이 개입한 정황인 셈이다.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에리카 김씨의 귀국 의도가 뭔지 아직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은 것 같다”며 “수사를 마무리 짓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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