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소송 등 전후…검찰, 현직 세무서장 소환방침
미국에 머물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게 억대의 돈을 건넨 대기업은 에스케이텔레콤(SKT)과 현대자동차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대기업은 돈을 건넨 시점을 전후해 세무조사를 받고 있거나 법인세 소송을 벌이는 등 국세청과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과 통신중계기 납품업체인 에스케이텔레시스의 협력업체들이 조사 대상으로, 세무조사 기간이 두차례 연장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2008년 11월에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현대우주항공에 대한 보증채무를 덜어주려고 현대차 계열사가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뒤 이를 손실처리했으나, 국세청은 “조세 부담을 부당하게 감소시켰다”며 수백억원대(현대차 556억원, 현대모비스 397억원)의 법인세를 매겼다.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형제 회사인 현대중공업의 법인세 1006억원까지 합하면 2000억원에 가까운 대형 소송이었다. 그러나 현대차 등 3사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에 걸쳐 1심에서 모두 패소했고, 현대중공업을 뺀 두 회사는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한 전 청장이 두 그룹에서 받은 돈은 수억원대이며, 에스케이텔레콤이 현대차보다 2배가량의 금액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청장은 “용역 보고서를 작성해주고 받은 정상적인 자문료”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한 전 청장이 출국한 것은 2009년이지만 세무조사는 지난해에 시작됐다”며 “세무조사와 무관한 용역 자문료”라고 주장했다. 현대차 쪽도 매달 일정액의 자문료 명목으로 건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는 의혹을 받던 한 전 청장에게 억대의 돈을 주고 용역을 맡길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이나 현대차 외에 한 전 청장에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돈을 건넨 기업 수십곳도 국세청 업무와 관련한 청탁성 자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특수부 출신인 한 변호사는 “만약 한 전 청장이 국세청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겠다며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면 특가법의 알선수재가 되고, 측근 세무서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한 전 청장에게 자문료 지급을 요구했다면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곧 한 전 청장에게 ‘자문료’가 건네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현직 세무서장 ㅈ씨를 불러 이 돈의 대가성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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